[조성기의 反 금병매] (10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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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금련이 현관문을 열자 서문경이 부채를 흔들면서 비틀걸음으로 들어섰다. 금련은 반가운 기색으로 달려나왔다가 서문경의 형색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게다가 술냄새와 이상한 냄새들이 두루 섞여 코를 찌를 지경이었다.

"워낙 귀하신 분이라 얼굴 뵙기가 어렵군요. 오늘은 어쩐 일로 저 같은 계집을 다 찾아오셨나요?"

금련이 입을 비쭉이며 빈정거렸다.

"그동안 찾아오지 못하여 미안하오. 집안에 일들이 많아 눈코 뜰 새가 없었소."

"눈코 뜰 새는 없어도 술 마시고 기생들과 어울릴 새는 있었던 모양이군요."

"아니, 어떻게 내가 기생집에 다녀온 것을 아오?"

서문경이 왕노파가 벌써 금련에게 일러주었나 하고 왕노파를 돌아보았다. 왕노파는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말이죠, 몇 명의 여자랑 잤는지 하는 것도 알아맞혀요. 어제 세명의 여자랑 잤죠?"

서문경은 속으로 뜨끔하였으나 시치미를 떼고 대답했다.

"아, 그런 일은 없었소. 친구들이 생일 축하해 준다고 해서 기생집에 가서 술만 좀 마셨을 뿐이오."

사실은 술만 마신 것이 아니고 친구들과 정력 겨루기를 한다고 하룻밤에 몇 명의 여자랑 교접할 수 있는가 내기를 하였던 것이었다. 열명의 친구들 중에서 백뢰광이라는 자가 하룻밤에 여덟명의 여자랑 교접을 해 단연 일등을 했는데, 나중에 여자들을 불러 조사해 보니 백뢰광은 여자들만 절정에 오르게 하고 자기는 검지와 중지로 항문 밑을 눌러 정액이 방출되는 것을 절묘하게 막았던 것이었다. 그래서 백뢰광은 일등 자격이 상실되기는 하였지만, 친구들은 백뢰광의 그 비법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백뢰광이 가르쳐준 비법은 대강 다음과 같았다. 교접시에 눈을 감고 생각을 집중한다. 혀를 입천장에 붙인다. 등을 구부리면서 목은 쭉 편다. 콧구멍을 크게 하고 어깨를 편다. 입을 다물고 들숨과 날숨을 쉰다. 이렇게 하면 파정을 최대한 지연시키거나 아예 막을 수 있게 된다. 그래도 파정을 하려고 하면 왼손 검지와 중지로 항문과 음낭 사이를 눌러줌과 동시에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서 이빨을 수십 번 악물고 숨을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하여 한 번 파정을 하지 않으면 기력이 돌아오고, 두 번 파정을 하지 않으면 눈과 귀가 밝아진다. 세 번 참으면 여러 가지 잔병이 사라지고, 네 번 참으면 정신이 편안해진다. 다섯 번 참으면 혈액순환이 활발해지고, 여섯 번 참으면 허리가 튼튼해진다. 일곱 번 파정을 하지 않으면 엉덩이와 가랑이에 힘이 붙는다. 여덟 번 파정하지 않으면 몸에 윤기가 흐른다. 아홉 번 참으면 수명이 연장된다. 열 번 파정을 하지 않으면 드디어 천지의 신령들과 통하게 된다.

사실 그 비법은 서문경도 그동안 은밀히 써먹은 것이지만, 파정 직전에 멈춘 정액은 옛 선인들이 말한 대로 정말 옥경을 거쳐 뇌로 올라가는지 파정을 중단하고 나면 머리가 멍해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머리가 멍해지는 것보다 차라리 파정을 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 서문경은 파정 중단 비법을 폐기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오늘 금련과 교접을 하게 되면 그 파정 중단 비법을 써먹어야 할지도 몰랐다. 왜냐하면 지난밤에 너무 많은 정력을 소비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몸에서 여자 냄새가 나는데 왜 그러세요? 아니면 새 부인 냄새인가? 새 부인이 야한 여자인 모양이죠? 이 냄새는 야한 여자들만 쓰는 화장품에서 나는 건데."

금련은 서문경이 쓰고 있는 모자를 홱 빼앗아 냄새를 맡아보고는 방바닥에 집어던지기까지 하였다. 새술이 달린 그 모자는 기왓장 사이의 고랑 같은 홈이 세로로 나 있어 와릉모라고도 불렀다. 왕노파가 허겁지겁 바닥에 떨어진 와릉모를 주워 탁자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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