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표 6·29 특별선언」의 의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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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정당이 획기적인 「6·29 폭탄선언」 을 통해 직선제를 수용하고 김대중씨의 사면·복 권을 대통령에게 건의키로 함으로써 2년여 끌어온 개헌정쟁과 극심한 시국문제는 일거에 해결되게됐다.
이로써 제5공화국 들어 줄기차게 강도와 방법을 달리하며 도전과 응전을 되풀이해온 악순환의 큰 고리는 끊어진 셈이다.
노태우대표가 이처럼 급격하고 과단성 있는 결단을 내리리라고 기대한 사람은 민정당내에도 극소수일만큼 이날의 선언은 극적이고 충격적이었다. 심지어 청와대와의 사전협의도 없었다는 말도 나돌아 관심을 끌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노태우대표의 선언은 민정당 스스로가 말해온 구국적 차원의 결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수년간의 여야 정치 행태를 보아온 사람들이라면 시국불안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뻔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가장 쉬운 해답에 이렇게 많은 국민이 놀라고 경악하는 것은 우리의 정치가 너무나 오랜 기간 비상식적이고 국민의 마음을 떠난 영역에서 헤매고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지난 2·12총선이후 6·26평화대행진에 이르기까지 정치인들의 게임은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이 비타협적으로만 진행돼 왔다.
한마디로 여건, 야건 「국민」 의 존재와 힘을 왜곡 해석해온 것이 사실이었는데 이제 더 이상 「민」 의 존재가 백안시되는 현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대세가 형성됐으며 그것이 최근의 시위사태를 통해 극명히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민정당은 이런 배경과 여건을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로 받아들였다. 정치일정과 헌법은 국민의 소망과 판정에 맡겨야하며 잇단 시위로 무정부상태가나 다름없는 치안상태가 하루속히 회복되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현실로 인정한 것이다. 민정당이 지금까지 그토록 하기 싫어하면서 내각제라는 대안으로 방어하려했던 직선제를 채택한 것은 실로 획기적이며 그야말로 야당할 각오를 행동으로 보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민정당이 직선제를 극력 반대한 것은 흑백논리·극한대립·지역감정 격화등 과거 경험에서 터득한 부정적 요인들을 고려한 탓도 있었지만 더 본질적인 것은 야당의 두김씨에게 맞설만한 대중정치인이 없고 따라서 승산이 적다는 점이었다.
그러던 민정당의 현단계에서의 직선제 수락은 「사칙필생」 이란 최후의 선택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김대중씨의 사면·복권을 전제로 그 같은 결심을 했다는 것은 노대표와 두김씨의 정면대결도 각오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야당을 하더라도 나라를 살리고 「후대의 명예」 를 보장받는 선택을 하겠다는 쪽이다.
정부·여당이 이제 새 수습안을 실천에 옮긴다면 야당의 투쟁일변도 정치도 자연히 획기적인 변모를 겪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들의 심정적 욕구에 호소해 아스팔트 위에서 승부를 가리겠다는 야권일부의 기본전략은 수정될 수밖에 없게됐다.
앞으로 직선제개헌과 새 대통령선거까지의 정치과정에서 야당이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여야합의를 지지부진하게 만든다면 이제 야당이라고 해서 국민의 과보호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민정당의 새 시국수습안에 따라 여야는 이제 지체 없이 구체적인 결실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절대절명의 시한인 내년2월까지는 불과7개월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 기간 내에 우선 여야는 대화와 협상을 통해 대통령직선제 합의개헌을 만들어내야 한다. 여야 대표회담을 통하든, 중진회담을 통하든 먼저 새 헌법안의 대강만 합의된다면 개헌안을 만들고 직선제를 위한 대통령선거법을 성안하는 것은 그리 힘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개헌안이 마련되면 국회통과·국민투표라는 절차를 밟아야하며 늦어도 11월말이나 12월초에는 대통령선거를 실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절차와 병행해 여야는 각기 대통령직선제에 맞는 내부적인 정리를 해야한다.
민정당의 경우 노태우대표가 합의개헌 절차를 모두 주도할 뿐 아니라 큰 변화가 없는 한 직선제하의 대통령후보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
반면 민주당은 김대중씨가 사면·복권되어 정치의 전면에 나타나면 심각한 내부 진통이 있을지 모른다. 우선 김대중씨는 작년에 자신이 직접 밝힌 『직선제가 되더라도 다음 대통령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겠다』 는 약속을 어떻게 처리할지 주목된다.
또 김대중·김영삼씨 간에는 「대통령후보와 당총재의 역할분담론」 등 정치적 이해가 민감히 대립하는 문제가 수없이 많다.
다만 두 김씨는 두 사람이 어떤 진통과 절차를 겪든 직선제만 하면 이길 수 있다는 「신앙」(?) 같은 것이 있는 만큼 이 같은 신념과 위상이 새 환경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갈지가 전 국민적 관심사다. <전 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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