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의원들의 자기목소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창당후 처음으로 21일 민정당 의원총회에서는 토론다운 토론이 벌어졌다. 『조금만 느슨하면 백화제방이 되고, 조금만 죄면 침묵의 바다가 된다』고 하던 여당의 생리로 보아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시류에 따르는 인기발언이나 위를 의식한 눈치 발언이 나오지 않도록 먼저 13개반으로 나눠 예비토의를 거쳐 그 결과를 그룹별로 발표하는 형식을 위한것부터가 색달랐다.
장장 6시간 10분간이란 토론시간도 경이적이었으며 의원들이 모두 『이처럼 고뇌속에서 가슴으로부터의 말을 해본 적이 없다』고 실토할 정도였다.
의원들은 대체로 극도의 위기감 속에서 자성의 소리를 앞세웠고, 비교적 국민들의 감각에 근접한 수습안들을 제시했다.
『언제 4.13을 우리에게 물어봤느냐』『국민에게 약속해놓고 안지키니 이 모양이 됐다』 『빨리 신뢰회복을 해 미움의 대상에서 벗어나자』 ….
자탄을 넘어 절규에 가까운 발언들 속에는 일찌기 민정당에서는 상상도 못할 내용이 끼어 있었다.
『직선제를 당당히 받아 야당할 각오로 임하자』는 주장이 별로 거부감 없이 들리는 분위기였으며 『당에 병영냄새를 없애는 체질개선을 하자』 『앞으로는 「결단」이란 말이 나와서는 안된다』는등 해석 여하에 따라서는 엄청난 뉘앙스를 담은 것도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국민에게 철저히 인기없는 민정당을 이제라도 국민 편으로 끌고 가야한다』고 결론지었고, 과거 각종 회의에서 강경발언을 선도하던 의원들은 이날따라 말이 없었다. 이같은 토론과정을 거친 민정당 의원들은 『모처럼 보람을 느낀다』 고 했다.
확실히 지금까지 보아온 어떤 민정당 회의와도 다른 분위기였고 많은 의원들이 진정으로 자기 목소리로 참여한 회의였다. 그래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집약된 의견들은 어느 때보다 강하고 설득력 있는 내용이 됐다. 평소 강한 여당, 일사불란한 여당을 내세웠지만 어떻게 해야 힘이 나오고 어떤 과정을 거친 결론이라야 일사불란한 당론이 될 수 있느냐를 갈 보여준 셈이다. 여당의 이런 변신이 이 시절 한순간 「느슨한 분위기」의 산물로 끝날지, 체질화할지는 두고볼 일이다.<박보균 정치부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