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 … 정의는 지켜져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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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호 18면


‘저 들의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이런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 ‘상록수’를 가장 자주 들을 수 있었을 때는 1998년이었다. TV를 켜면 공익광고에 상록수 노래를 배경으로 박세리의 US오픈 우승 장면이 자주 나왔다.


박세리의 공이 해저드에 빠지는 장면, 양말을 벗는 장면, 우승 퍼트를 넣는 장면, 양 팔을 들어 환호하는 장면, 우승컵에 입을 맞추는 장면이 이 광고에 나왔다. 특히 ‘끝내 이기리라’는 마지막 가사와 함께 박세리가 양 팔을 높이 치켜들며 기뻐하는 장면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한국인은 외환위기 속 이 노래를 들으면서 다시 일어설 꿈을 꿨다. 한국은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한국 여자 골프는 세계 최강이 됐다.


1998년 LPGA 투어 루키였던 박세리가 올해 은퇴했다. 한국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여자골프계에 한국 천하의 기틀을 만든 박세리의 19년간의 여정에 경의를 표한다.


공교롭게도 외환위기 시절 LPGA 투어 루키로 맹활약한 박세리가 은퇴한 2016년 다시 상록수 노래가 들린다. 가수 양희은은 광화문 광장의 촛불 속에서 다시 상록수를 부르고 있다. 상록수는 어려움을 견디고 이겨내자는 노래다. 연말에 캐럴이 아니라 상록수가 들리는 것은 사회가 어렵다는 얘기다.


한국은 올해 수출 부진과 구조조정 여파에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외환위기 때인 98년 수준까지 떨어졌다고 한다. 우연이겠지만 박세리의 선수생활 마감과 함께 한국이 역동적인 힘을 잃는 것 같다.


98년 박세리가 국민에게 커다란 영감을 준 것은 누구라도 열심히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줘서다. 박세리는 가난했다. 다섯 식구가 한 방에서 잤다. 다른 아이들이 겨울에 따뜻한 나라로 전지훈련 갈 때 박세리는 뒷산 저수지 옆에 텐트를 치고 훈련을 했다. 어린 박세리의 손에 서리가 낄 만큼 추운 겨울, 산속에서 클럽을 휘둘렀다. 아버지 박준철씨는 “한국인은 햄버거가 아니라 고추장 먹고 커야 큰 사람이 된다”고 딸을 설득했다. 기죽지 말라고 한 얘기인데 박세리는 이 말을 믿었다. 그래서 성공했다.


박세리를 보고 한국인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어려워도 이겨낼 수 있다는 의지가 있었다. 박세리의 성공사례처럼 스포츠는 부자나 권력자 부모를 둔 사람이 아니라 열심히 한 사람, 뛰어난 사람이 성공한다는 교훈을 준다.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에서 선수들의 능력은 숫자로 나온다. 스포츠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일종의 도덕교과서다. 요즘 점점 이런 공정성이 줄어드는 것 같다. 최순실 게이트는 이런 스포츠의 정의를 깨뜨리려 시도했다. 공정성이 생명인 스포츠가 오히려 가장 만만한 대상이 되어버렸다.


다른 분야에서는 그렇지 못하더라도, 아니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최소한 스포츠에서만은 이 정의가 지켜져야 한다. 스포츠는 공정성의 보루다.


박세리의 시대는 갔지만 누구라도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그의 메시지는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란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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