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야당은 황교안 대행 그만 흔들고 힘 실어줘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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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부 재야와 야권의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 흔들기가 심각하다. 17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8차 촛불집회에선 일부 시위 행렬이 총리 공관 100m 지점까지 진출해 ‘황 대행 즉각 사퇴’를 외쳤다. 집회 주최 측은 황 대행이 “탄핵당한 대통령의 수족”이라 사퇴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은 박 대통령의 국정 농단에 대해 폭력 대신 법치, 즉 헌법상 탄핵 절차를 통해 단죄했다. 황 대행이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는 것도 바로 그 헌법의 위임에 따른 것이다. 국민이 헌법의 이름으로 대통령을 심판했다면 헌법에 따라 가동된 황 대행 체제의 지위를 인정하고 차기 정권 출범 시까지 권한을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도 일부 재야와 야권은 구체적인 로드맵도 없이 황 대행의 무조건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납득하기 어렵다. 황 대행 체제는 사실 야권이 자초한 결과 아닌가.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면 임명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제안을 일축하고 탄핵을 밀어붙여 책임 총리를 차단한 주인공이 바로 야권이다. 그래 놓고 느닷없이 물러나라니 공감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야권은 집권의 정통성을 위해서라도 황 대행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두 달 가까이 방치돼 온 경제·안보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수권을 꿈꾸는 야당이라면 즉각 황 대행과 머리를 맞대 해법을 도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 ‘야·정 협의’만 고집하는 대신 황 대행과 야 3당 대표들이 일대일로 회동하는 타협안에 전향적으로 응해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이 조만간 비상대책위 체제로 전환되면 난항을 겪어온 ‘여·야·정 협의체’ 출범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때를 위해서도 야당은 선제적으로 협치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황 대행도 낮은 자세로 국민과 국회, 특히 야당을 대해야 한다. 황 대행의 권한은 헌법이 위임한 법적 지위일 뿐이다. 반면 야당은 국민에 의해 선출됐고 국회 의석의 다수를 점해 정치적 정통성과 입법 주도권을 모두 갖고 있다. 황 대행은 야당의 그런 지위를 인정하고 주요 현안을 협의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공개 천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