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재야와 야권의 ‘황교안 권한대행 체제’ 흔들기가 심각하다. 17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8차 촛불집회에선 일부 시위 행렬이 총리 공관 100m 지점까지 진출해 ‘황 대행 즉각 사퇴’를 외쳤다. 집회 주최 측은 황 대행이 “탄핵당한 대통령의 수족”이라 사퇴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은 박 대통령의 국정 농단에 대해 폭력 대신 법치, 즉 헌법상 탄핵 절차를 통해 단죄했다. 황 대행이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는 것도 바로 그 헌법의 위임에 따른 것이다. 국민이 헌법의 이름으로 대통령을 심판했다면 헌법에 따라 가동된 황 대행 체제의 지위를 인정하고 차기 정권 출범 시까지 권한을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도 일부 재야와 야권은 구체적인 로드맵도 없이 황 대행의 무조건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납득하기 어렵다. 황 대행 체제는 사실 야권이 자초한 결과 아닌가.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면 임명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제안을 일축하고 탄핵을 밀어붙여 책임 총리를 차단한 주인공이 바로 야권이다. 그래 놓고 느닷없이 물러나라니 공감할 국민이 얼마나 되겠는가.
야권은 집권의 정통성을 위해서라도 황 대행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 두 달 가까이 방치돼 온 경제·안보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수권을 꿈꾸는 야당이라면 즉각 황 대행과 머리를 맞대 해법을 도출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를 위해 ‘야·정 협의’만 고집하는 대신 황 대행과 야 3당 대표들이 일대일로 회동하는 타협안에 전향적으로 응해야 할 것이다. 새누리당이 조만간 비상대책위 체제로 전환되면 난항을 겪어온 ‘여·야·정 협의체’ 출범도 가능해질 것이다. 그때를 위해서도 야당은 선제적으로 협치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황 대행도 낮은 자세로 국민과 국회, 특히 야당을 대해야 한다. 황 대행의 권한은 헌법이 위임한 법적 지위일 뿐이다. 반면 야당은 국민에 의해 선출됐고 국회 의석의 다수를 점해 정치적 정통성과 입법 주도권을 모두 갖고 있다. 황 대행은 야당의 그런 지위를 인정하고 주요 현안을 협의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공개 천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