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을 외롭게 하지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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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2년전 이곳 전남 여천에서 「여천의 날」행사를 준비하던중 나의 제안으로 행사장 6백석 로열 박스에 관내 80여명 교장선생님의 자리를 마련했던 일이 있었다. 물론 당시 교육에 이해가 깊었던 전남 여천출장소 K소장의 배려 덕분이었다.
그러나 요즈음 곳곳의 각종 행사장엘 가보면 교장석을 배려한 곳은 거의 없다. 말로는 교사를 예우해야 한다면서 실제는 그렇지 못한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닌가?
지난 30여년간 내 자신 교단에 몸담아있으면서 키워낸 제자만도 기천에 이르리라. 그런데 예기치 않은 장소에서 제자들을 만날 때가 있다. 엄연히 내 제자인줄 아는데도 그들이 나를 외면할때의 그 서글픈 심정이란….
반면 차를 타고 바쁜 일에 쫓겨 길을 가다가도 되돌아와 반겨주는 제자를 만났을 때, 나는 기억을 못하는데도 『○○학교의 몇회 졸업생 아무개입니다』고 정중히 인사를 해올 때, 까맣게 잊고 있던 제자로부터의 뜻하지 않던 문안편지등, 이런 것들은 교육자로서의 보람과 기쁨을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의회민주주의가 발달한 영국의 경우 의회의원에게는 국민들이 인사를 하지 않아도 교사들에겐 깍듯이 인사를 한다고 들었다. 아마도 민주주의의 기본이 되는 국민의 자질은 학교선생님의 교육에 의해 키워진다는 생각에서인듯 하다.
이른바 사회적으로 출세했다고 꼽히는 내 친구중 한 사람은 『학교 선생님이 최고』라고 늘 주장하며 내가 교장직에서 교육행정직으로 전직한 오늘의 나를 못마땅해한다.
지금도 그를 만나면 『하루속히 교장직으로 돌아가게나. 사람을 사람답게 키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나』고 충고한다.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예부터 교사직은 성직으로 일컬어져왔다. 특히 동양에서는 『군사부 일체』라고 하여 임금과 아버지와 스승을 한줄에 놓고 충성과 존경을 바치는 대상으로 흠모해왔다.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인간관계도 변했다. 『사도가 땅에 떨어졌다』는 비판의 소리도 높다. 군사부일체의 도덕률을 오늘에 강조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오늘날 금전만능의 천박한 풍토에서라도 선생님의 품위와 권위는 지켜져야 한다. 선생님에 대한 사회·학부모·제자들의 존경심이 없는한 제대로 된 학교교육은 기대할 수 없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교사들 스스로도 자신이 얼마나 본분에 충실해 왔던가, 정열과 사랑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선도해왔던가 반성해봐야 할 것 같다. 교사들 스스로 자신이 사회에서 천대받고 있고 어쩔 수 없이 이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런 교사들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존경받는 스승상은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이 사회에서 스승을 외롭게 하지 말자. 또 어린 학생들을 외롭게 하지 말자. 우리 모두는 간섭아닌 애정과 관심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오늘날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바로 잡도록 함께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우리 모두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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