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에 지어본 한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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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9호 29면

나이가 들어 한문구절을 종종 읽으면 군더더기 없는 옛 시인들의 시(詩)들이 향기롭기도 하고, 이렇게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선현이 계셨다는 자긍심이 생긴다. 얼마 전에 대학의 서예과 원로 교수님에게 시를 짓는 방법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런데 약간 의심쩍은 표정으로 “아니 남들은 복잡하다고 멀리하는 한문공부를 왜 하시려고 하오”라며 오히려 힐난 섞인 반문을 하셨다. 한마디로 ‘영양가 없는 일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적당한 물리침의 말씀이었다.


그래도 핑계를 대며 배울 의지를 놓지 않자, 저녁시간에 연구실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뒤 저녁식사를 하시는 도중 이렇게 말씀을 이어갔다.


옛날 어른들은 공부를 어느 정도 하면 “그래 운(韻)이나 띄웠나” 하고 질문을 했다고 했다. 그 뜻은 글이란 일정한 격식이 있어 생각나는 대로 쓰게 되면 잡문이 되고 산문이 된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마음이 산만하게 흐트러짐을 막을 수 없게 된단다. 스승이 없는 사람들은 어쭙잖게 글자 몇 자를 주워들어 써내려 가게 되는데, 그것을 금방 알게 하는 것이 운을 맞춘 글의 형식이라는 뜻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의 한시 짓는 강독시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한 달 정도 되었으니 운을 맞추는 일에 전념을 해야 합니다. 겨울이 되어 방학에 들어가면 나도 서울로 올라가고 내년 봄에나 만나게 되는데 아직도 운 맞출 생각을 안 하고 잡문을 지으면 안 되지요.” 그 말씀에 마음은 부끄럽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스승된 자는 제자가 가르친 대로 따라오길 바라고, 제자는 열심히 따라가도 못 미치는 것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럴 때 나는 왜 이렇게 어려운 한문시 공부를 해서, 마음고생을 자초하는지 하고 되돌아 본다.


한문은 고사하고 시를 짓는 정서적인 마음이 함께하지 않으면 시문장이 좋게 나올 리 만무했다. 그렇게 혼도 나고 하던 저녁에 교수님은 운을 고치고 ‘평측’을 봐주셔서 부끄럽긴 하지만 드디어 한편의 ‘오언절구’가 시가 되었다.


입동 자엽락(入冬 自葉落)이요한로 하습의(寒露 下濕衣)라대설 박공야(大雪 迫空夜)에불방 번심희(不放 煩深?)라.겨울이 시작되어 낙엽은 스스로 떨어지고차가운 서리 내려 옷깃을 적시네.대설 절기가 다가와 밤 들녘은 텅 비고내려놓지 못한 번뇌만 깊이 끌어들이고 있네.


정은광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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