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오늘 당장 ‘4월 퇴임·2선 후퇴’를 육성으로 밝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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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당에서 4월 퇴진, 6월 조기 대선을 하자는 당론을 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때부터 그대로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쭉 해 왔다”고 말한 것으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전했다. 내용과 형식이 모두 미흡하고 부적절해 믿기 힘든 언급이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의 거취 문제라면 새누리당 지도부에 전하는 간접 화법이 아니라 국민 앞에 명백하게 밝히는 공개 약속의 형식을 택했어야 한다. 가뜩이나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했다가 거부하는 등 대통령의 말 뒤집기는 민심 악화와 불신을 가중시킨 가장 큰 원인이었다. 게다가 주말마다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헌정 사상 최대 규모 촛불이 한마음으로 외치는 게 바로 대통령 퇴진이다. 이런 이 나라 최대 현안을 ‘당론에 따르겠다는 생각을 쭉 했다’는 식의 구렁이 담 넘어가는 형태로 넘어가려 한다면 그건 안 될 일이다.

내용도 미진하다. 자신의 잘못을 구체적으로 사과하고 4월 퇴진과 즉각적인 2선 후퇴를 실천하는 게 국정 혼란을 매듭짓는 길이다. 국회 추천 거국총리에게 국정 전반을 맡기겠다는 뜻도 함께 밝혀야 한다. 그게 질서 있는 퇴진이고 그래야 대한민국이 최악의 위기를 넘긴다. 박근혜 정부는 이미 수명을 다했다. 탄핵이든 중도 퇴진이든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제 중요한 건 ‘포스트 박근혜’, 즉 다음 대통령을 잘 뽑는 것이다. 그래서 질서 있는 퇴진이 절실한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탄핵이 의결되면 대통령은 즉각 사임하라”고 요구했다. 탄핵안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가면 ‘즉각 퇴임’ 투쟁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여기에는 조기 대선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전략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제 야당의 대주주인 문 전 대표도 국가 위기 수습을 위해 질서 있는 퇴진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물론 그에 앞서 박 대통령이 4월 퇴진과 즉각적인 2선 후퇴, 거국총리 권한 이양을 국민 앞에 약속하고 실천해야 한다. 오늘 당장이 아니면 늦다. 박 대통령의 마지막 애국심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