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수<서양화가>|이달주작 『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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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내가 달주를 처음 만난 것은 1939년, 동경미술학교(지금의 동경예대)에 입학하려고 천단화학교에서 석고데생공부에 열중하고 있던 때였다. 치열한 라이벌관계였을 수험생 시절부터 우리 두 사람은 마치 꼬아놓은 새끼줄처럼 붙어다녔다. 그리고 그 많은 한국인 학생중에서도 오직 우리 두 사람만이 나란히 합격한 것이다.
성격이 정반대면서 우리 두 사람은 외로운 섬에서 만난 양 일본인들 틈바구니에 끼어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었다.
내가 7년간의 파리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1961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난 62년까지의 2년간은 마치 그가 죽음을 예견이라도 하듯 나에게 온갖 지정을 쏟아주었던 시절이었다.
그가 떠난 날은 음력으로 바로 나의 생일이었다. 그는 그날 점심에 P씨 등과 낮술을 들면서 『오늘 저녁에는 흥수 생일잔치에 가야하는데…』하면서 쓰러졌다는 것이다.
1959년 9회 국전에서 특선한 『귀로』(112×150㎝)는 그의 만년의 대표작인 셈이다. 본격적인 데생과 감미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색감, 그리고 정성을 다한 붓자국- 그는 마치 유서를 쓰듯 이 한 점의 그림 속에 그가 하고자한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아놓았다.
한국처녀들의 순박한 정감을 아름답게 그려냄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한국인으로서 평화로운 꿈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는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이 한점의 그림은 진주와 같이 빛나고 있다.

<30일까지 호암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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