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양사건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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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어쨌든 한 사람의 「죽음」은 헛되지 않아야 한다.
기독교인으로서 부활절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범양상선 박회장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앞으로 가려질 잘잘못은 차치하고, 우선은 회사를 쓰러뜨리지 말아야하며, 탈세나 외화도피등은 철저히 가려 감계로 삼아야하고 이 사건에 대한 기업윤리, 그리고 도덕적인 측면에서의 저울질도 해보아야한다.
이번 범양상선사건에는 또한 사람의 죽음이 있다.
고 박회장의 충격적인 자살과 잔잔한 글씨체의 유서, 세상의 이목앞에 폭로된 자신의 복잡한 사생활등으로 인해 거의 모든 사회적인 생명이 끊긴 한사장의 「죽음」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 역시 헛되지 않아야만 하는것은 마찬가지다.
이럴때 금방 「배반」 과 「방탕」, 「탐욕」의 인간형을 하나 만들어 손쉽게 매도하고 내쳐버리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의 생리겠으나, 그것은 그의 삶에 대한 판단이지 죽음 앞에서의 제의는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두 사람의 죽음은 서로 따로 떼어 생각할 성질이 아니다.
생전에 얽혔던 두 사람의 삶이 서로의 「약점」 때문이었건 아니건 서로 갈라질 수 없었던 것처럼, 두 사람의 죽음을 헛되이하지않는 것도 함께일 수밖에 없다.
두 죽음앞에서의 경건한 제의를 위해 이제 모두들 탈세·외화도피·사생활등의 표지적인 관심을 넘어 이번 사건을 전문경영인과 오너 경영인 사이의 「갈등」으로 받아들이고 그 교훈을 찾는 노력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제 우리 사회나 기업이 오너와 전문경영인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요구하는 시점에 들어섰음을 두사람은 죽음으로써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있는 것은 아닐까.
기업에서의 주종관계 재정립은 어찌보면 노사관계의 재정립보다 훨씬 어렵고 험한 고비를 넘어야만할지 모른다.
주종관계는 노사관계보다 훨씬더 「가깝고도 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 어렵다하여 더이상 외면한채 덮어둘 문제가 아님을 두 사람의 죽음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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