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과 부처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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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사탄이여! 어서 오십시오.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대로 거룩한 부처님입니다…』
조계종의 성철종정은 이번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또 한번 당세의 법어를 발표했다.
좁쌀알 보다도 작아만 가는 현대인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헤아리기 어렵지만 무언가 기슴에 와닿는 시원한 맛이 있다. 『사탄과 부처란 허망한 거짓 이름일뿐 본 모습은 추호도 다름이 없다』는 것이 성철종정의 경구다.
부처는 두말할 것도 없이 불교의 교조인 「샤카무니 붓다」다. 붓다의 본래 의미는 범어로 「깨달은 이」. 불교에선 이 세상에 온 석존만이 부처가 아니라 미망을 여의고 스스로 진리를 깨달아 다른 중생구제에 나서는 이는 모두 부처라고 한다.
그런 성스러운 존재를 악마인 사탄과 비유하다니 불경하기 짝이 없다. 얕은 소견을 가진 불교신자라면 당혹할지도 모른다.
사탄이란 말 자체가 불교엔 없다. 그 말은 히브리어로 「방해자」란 뜻이다.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흔히 「악마」로 표현되는 고약한 존재다.
그러나 성철종정은 사실은 불교의 진수를 설명하고 있다.
『대반리반경』에는 「일절중생 실유불성」이란 유명한 말이 나온다.
「사람이 본래 부처님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가 아니다. 「동물이나 곤충까지도 포함한 일체의 생명을 지닌 존재에 다 불성이 있다」는 선언이다.
불성은 바로 붓다가 될 가능성, 붓다의 소질을 말한다. 다른 말로 여래의 씨를 가지고 있는자, 곧 여래장이다.
부처나 중생이 소질면에선 똑같지만 지혜를 개발, 완성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와의 차이만이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까 불교에선 중생을 존중하지 않을수 없다. 또 지혜의 개발과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몸을 닦지 않으면 안된다.
「악마와 성인을 다같이 부처로, 스승으로, 또 부모로 섬기게 되는」 마음은 그래서 생긴다.
선악의 시비와 구별과 대립은 무의미한것이라는 뜻이다.
부처님은 「노·병·사가 이 세상에 보내진 세 명의 천사」라고 말한 일도 있다.
깨우침을 등한히 하지않는 이는 행복할 것이고, 천사를 보고도 눈을 뜨지 못하는 이는 영구히 슬퍼해야 한다고 깨우쳐주기도 했다.
고해의 번뇌에 찌들리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러나 이 세상을 극악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들 자신이라는 것을 이 땅의 중생이 다시 마음에 새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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