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당을 움찔하게 만든 한 선거구의 보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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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하원은 지역구만 650개다. 그러나 한 지역구의 선거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1일(현지시간) 런던의 부유한 선거구인 리치몬드에서 치러진 보선이다. 이곳은 보수당 아성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자유민주당 의원이 당선됐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반대하며 제2 국민투표 요구를 내걸면서다. 이변이다.

이곳의 원래 '주인'은 보수당의 런던시장 후보로도 나섰던 잭 골드스미스였다. 2015년 총선에서 2만3000표 차로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정부가 히드로공항을 확장키로 결정하자 이에 반발, 의원직을 내던졌다. 보선이 열리게 된 이유다. 골드스미스는 이번엔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보수당은 후보를 내지 않았다. 골드스미스가 다시 배지를 다는 건 당연지사로 여겨졌다.

그러나 불과 지난해 정치를 시작한 '신인'인 자민당의 사라 올니 후보가 1872표 차로 골드스미스를 눌렀다. 자민당이 EU탈퇴 문제를 강하게 제기한 것이 먹혔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노동당 지지자들은 물론 일부 보수당 성향 유권자들도 올니에게 투표했다는 것이다. 지난 총선에서 57석에서 8석 정당으로 찌그러들었던 자민당으로선 놀라운 '컴백'이다.

이 같은 선거 결과를 두고 "브렉시트(Brexit)를 밀어붙인 보수당에 대한 일격"이란 해석이 나왔다. EU와의 강한 탈퇴를 추진하는 듯한 인상을 줄 뿐 구체적 계획을 내놓지 못하는 데 대한 민심의 분노란 것이다. 앞서 10월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의원직을 내놓으면서 열린 보선에서도 보수당 후보가 2015년에 비해 2만여표 줄어든 5700표 차로만 이겼다. 자민당은 이곳에서 지지율이 7%에서 30%로 늘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보수당의 아성에서도 보수당 후보들이 자민당 후보에게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게 확인됐다"며 "테리사 메이 총리로선 조기 총선을 결정하기 더욱 어렵게 됐다"고 분석했다. 결국 EU 탈퇴에 부정적인 의회와 계속 일할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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