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출제방향 빨리 정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내년도부터 대입제도가 「선지원 후시험」으로 바꿔면서 어떤 문제가 어떤 방식으로 출제될 것인가가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비상한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더우기 출제되는 문제의 30%는 주관식 문제라고 하니 그동안 객관식 문제에만 익숙해온 수험생들로서는 수험준비를 어떻게 해야 좋은지 몰라서 전전긍긍 하고있다.
때마침 대입출제를 맡은 중앙교육평가원장이 한 TV대담에서 『앞으로 주관식 문제는 단순히 해답을 암기해서 쓸수있는 문제는 내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예컨대『3·1운동이 일어난 해는 언제냐?』 와 같은 완성형· 단답형 출제는 하지 않겠으며 문제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표현할수 있는 능력을 테스트하는 문제를 내겠다고 부연 설명했다.
평가원장의 말대로라면 내년도 부터 전문제의 30%를 차지하는 주관식 문제는 문자 그대로의 주관식 출제가 된다는 뜻이 된다.
6, 7년동안 객관식문제에만 익숙하고 그런 출제경향에 따라 입시준비를 해온 수험생들로서 이 발언은 큰 충격으로 받아 들여질 수밖에 없다.
주관식 출제가 단순한 암기력 테스트가 아니라 분석력·종합력등 고등정신기능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때 원칙적으로 이런 출제방향을 나무랄수는 없다.
그러나 대입학력 고사까지 8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출제경향을 이처럼 급격히 바꾸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 것인지는 좀더 생각해볼 일일 것이다.
우리는 정부가 대입제도를 단계적으로 개선하는 목적이 신입생 선발권을 궁극적으로 대학의 자율에 맡기기 위한 조치로 알고 있다.
그동안 대입제도를 둘러싸고 엄청난 논란과 부작용이 생긴 근본적인 원인의 하나가 모든 대학생의 선발권을 국가가 독점해서 운영해온 데 있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제도가 바뀌면 그에 따른 충격과 혼란이 생기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다. 충격과 혼란이 겁이나서 분명히 모순투성이인 제도를 방치할수는 물론 없다.
우리가 선지원 후시험으로 대입제도를 바꾼데 대해 원칙적인 찬의를 표한 것은 그것이 학생선발권을 대학의 손으로 넘겨주기까지의 전단계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경우건 제도의 변화에 따른 부작용은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더우기 학생들을 제도의 모르모토로 삼는 일은 더 이상 있어서는 곤란하다.
새 제도를 적용하려면 적어도 3년의 유예 내지 시험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교육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선지원 후시험의 새제도 만해도 올해 고교에 입학하는 학생들부터 적용해야만 별다른 혼란없이 뿌리를 내릴수 있다는 것이 정실이다.
그런데도 급작스레 새 제도를 적용하면서 지금껏 주관식 출제의 내용조차 정하지 못했다면 당사자인 수험생들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하다.
출제가 어려우면 똑같이 어려우니 공평성에 그다지 문제될게 없다고 할지도 모르나 시험까지 몇 달밖에 안남은 시점인 것을 생각하면 그 기간 시험에 능숙한 기능만 익히라는 뜻도 될 수 있는 것이다.
충격의 흡수능력이 지역에 따라, 학교에 따라 차이가 날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 이상 그럴 경우 제도운영의 공평성에도 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당장 문교당국이 해야 할 일은 내년도 출제방향을 시급히 확정하는 일이다. 지금은 주관식 출제의 원칙론에 매달려 왈가왈부만 하고 있을때가 아니다. 어떤 쪽이건 구체적인 출제 방향을 확정지어야만 수험생이나 지도교사들도 거기에 맞추어 안정적인 입시준비를 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