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업은아기(도너 웰튼 <대구 미 문화원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나의 한국 생활에서 가장 즐거운 일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딸 「하나」를 낳은 것을 꼽는다. 아기와 엄마라는 존재는 한국 사람들의 마음 속에 매우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 나는 「엄마임」을 더욱 기쁘고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었던 듯 싶다. 거의 만삭의 몸으로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내가 구두끈을 매기 위해 몸을 굽히느라 쩔쩔 매면 재빨리 달려와 끈을 매주던 종업원들의 온정. 그런가 하면 아기를 데리고 있는 부모들에게『아기가 추워 보이네요』『아기가 졸린가 봐요』등등 친절한 배려와 관심을 표시하는 한국식의 다사로움을 어느덧 나 자신도 몸에 익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미국 문화원장이기 보다 「아기엄마」로 여기는 것이 처음엔 좀 낮설고 어색했지만 어느새 길들여졌나 보다. 사실상 「하나」의 엄마라는 사실에 비하면 미국 문화원장이라는 내 직책이 오히려 덜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어느 사회에서든 어머니라는 존재는 이 세상의 가장 도덕적이고 용기 있고 인간적인 모든 가치를 상징하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더욱 그 사실을 자주 실감케 되는 것 같다.
서울 미국 공보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퇴근길의 지독한 교통 혼잡은 나를 얼마나 몸달게 했던가. 집에 두고 온 딸이 보고싶어 마음은 더 없이 급한데 자동차들이 뒤엉킨 채 좀처럼 움직일 기미가 없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나는 한숨을 짓곤 했다.
물론 내가 집에 도착하면 「하나」는 아줌마와 함께 나를 마중 나와 있곤 했다. 차가 마지막 골목길로 꺾어 들었을 때 어느새 「외교관」이 된 생후 5개월짜리 딸이 지나가는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기도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또 얼마나 가슴 벅찬 기쁨이요, 행복이었는지….
과천 현대 미술관 정원의 아기 업은 어머니 동상은 한국 사람들 뿐 아니라 내게도 여간 인상적인게 아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동상을 보며 어머니 등에 업히는 즐겁고 따듯한 추억을 되살리겠지만 우리「하나」도 내게 업히는 것을 몹시 좋아하는 까닭이다.
올 들어 시위 진압을 위해 시내 이곳저곳을 막고 있는 경찰들을 볼 때마다 나는 너무도 어이없이 그 소중한 자식을 잃은 어느 어머니 생각에 가슴이 멘다.
「어머니의 나라」한국에서 엄마가 된 내게 있어 그 사건은 너무도 엄청난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새로운 임지인 대구로 내려 오기 전 어느 날 아침, 시내 중심가로 통하는 길을 막고 있는 경찰과 마주쳤을 때 나는 문득 현대 미술관 정원의 그 동상이 생각났다. 『모든 어머니들이 아기를 등에 업은 채 경찰과 조용하고 평화롭게 대치한다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