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정국으로 돌아가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이제 정국은 어디로 가며 어떻게 해야 풀리겠는가. 신민당과 재야단체가 주도한 박종철군 추도회가 경찰의「원천봉쇄」로 한고비 넘기면서 국민의 관심은 다음의 정국전개에 쓸리고 있다.
정부· 여당은 「2· 7」을 일단 무사히 넘겨놓고 이른바 「고문정국」을 「개헌정국」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방안을 다각도로 강구중이다.
야당 또한 추도회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에 바탕해서 2월 국회를 통해 대여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으면서 실세대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으로 나가는 것 같다.
「2·7추도회」가 공권력에 의해 무산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누구보다 집권한 목이 더 잘 알 것이다.
「고문정국」이 하루 속히 「개헌정국」으로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것은 여당의 바람만이 아니다. 대다수 국민들도 그렇게 바라고 있다 .파국적 사태 없이 촉박한 정치일정을 소화하려면 그 길 밖에 없다.
그러나 「고문정국」 과 「개헌정국」은 동떨어진 문제가 아니고 기실 표리관계에 있다. 즉 고문·인권은 민주화의 핵심문제며 그것이 개헌문제를 푸는 열쇠임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민정당이 정국 전환방안의 하나로 구속자 석방 및 사면· 복권문제에 관해 눈에 보이는 조치가 취해지도록 정부측에 촉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중이라는 소식은 그런 뜻에서 매우 다행스럽다.
박군 사건과 부산 복지원 사건 등을 다루기 위한 임시국회도 물론 열려야 한다. 이런 문제를 국회차원에서 여과한다는 것은 문제의 장외확산을 방지한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시국을 푸는 해법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에서 어떤 공통분모가 마련되지 않고서 무작정 문제를 장내화 하는 것만이 능사일수는 없다. 박군 사건이 던진 충격파는 그만큼 심각하며 중대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힘을 쥔 쪽의 결단이다 .2·7대회 무산을 통해 야당의 가두정치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면 같은 맥락에서 정부· 여당의 힘에 의존하는 강행전략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작용에는 반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따지고 보면 박군 사건이 일어난 원인은 모든 문제를 힘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반정부 인사들을 대화로 설득시키지 못하고 힘의 논리만으로 밀어붙이려 들면 사태는 풀리기는 커녕 더욱 악화만 된다.
한마디로 야당은 대중집회를 통한 선동이나 폭력으로 사태를 장악하려 둘지 말아야하고 정부나 여당은 공권력에의 무한의존으로 정국을 주도할 생각을 버려야한다.
물리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구태의연한 그런 방식의 해법에 국민들은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최근 미국 정부의 한국 정치에 대한 관심표명이 과거 어느 때 보다 구체적이고 미묘한 부분에까지 언급하고 있다는데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 .미 국무성의 「시거」 차관보나 「릴리」대사의 한국관계 발언이 물론 내정 간섭적 발언은 아니라고 믿지만 「우정 있는 충고」와 「내정 간섭적 발언」사이는 사실 종이 한 장 차이밖에 없다.
미국의 입장은 「보다 혁신적인 제안」을 통해 여야가 안협을 해야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여당이 사면·복권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중이라는 보도도 미국 정부의 충고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절실한 것은 제3자가 권고해서가 아니라 우려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해결해야하고 해결할 수 있다는 자세의 정립이다. 무엇이 안협을 가로 막고있는 장애인가는 누구보다 우리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그런 뜻에서 지금이야말로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할 수 있는 결단이 내려져야 할 시점이다. 그리고 그 결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