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민정대표의 기자회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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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기대가 크면 실망을 느끼기쉽고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은터에 귀에 번쩍하는 제의를 하거나 행동을 하면 사람들은 감명을 받게 마련이다. 현재의 상황이나 시점에서 노태우대표가 할수 있는 말에는 여러가지 제약도 있고 어려운점이 한둘이 아니라고 짐작은 된다.
예상을 뛰어넘는 기발한 구상이 나오기에는 그의 운신폭에 한계가있고 뜻하지 않게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과 회견이 겹친것도 곤혹이라면 곤혹이다.
이런 저런 사정속에서 이루어진 22일의 노대표 회견내용은 크게 주목을 받지못한것이 사실이다.
온 국민은 지금 박군사건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책인사에 이어 고문방지특별기구의 구성제의등이 비춰지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과연 박군사건의 충격과 상처가 아물지 의문이다.
고문행위는 어떤 일이 있어도 이번 기회에 근절되어야 한다는 온 국민의 일치된 목소리는 결국 민주화에의 열망이나 다름없다.
그런 국민 여망을 수렴해야할 집권당의 대표는 국민들이 피부로느낄수 있는 민주화에의 실천의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보여주었어야했다.
지금 온 국민이 주시하고 있는 이 민감한 문제에 대해 노대표는 당내에 「인권 신장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두고 『고문방지장치 보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물론 책임한계만을 따지면 민정당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천서 성고문 사건때만해도 침묵으로 일관하다 사건발생 한달이 지나 검찰에 의해 폭언·폭행사실이 인정되자 비로소 「유감의 뜻」이 담긴 성명을 내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인 것이 얼마나 민정당의 이미지에 손상을 입혔는지 동제했어야 했다.
이번 박군사건 수습과정에서 당의 역할이 컸다는 점은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그같은 노력은 개헌정국을 의식한 발등의 불끄기라는 인상을 주었던 점도 씻을수 없다.
집권당의 대표는 이번 고문사건에 대해 보다 대담하게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대책을 제시했으면 하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노대표가 『이번 사건이 이당에서 인권침해행위가 영원히 없어지는 계기가되어야 한다』 는 원칙논의 천명에만 그친 것은 모든 권한과 책임을 지고 있는 집권당 대표의 말로는 아무래도 미진했다.
우리가 이같은 고언을 서슴지않는 것은 인권문제가 정치이전의 문제일뿐더러 집권당의 개헌전략이나 나아가서 총선전략과 불가분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노대표가 언기법폐지를 논의하겠다고 한 대목은 언논자유가 모든 인권의 기본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진전이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언론계와의 의논」 보다는 스스로의 결단에의해 개선되어야할 문제다.
고문방지, 언론자유의 보강은 법의규정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집권당이 진정 고문을 방지하고 언론을 활성화시킬 생각이라면 법이나 제도의 개정에 앞서 주변환경부터 고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전체적으로 노대표의 회견은 어떤 여건 변화에도 불구하고 내각제 개헌안은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의지천명이 핵심이다. 그런 정치일정을 예정대로 소화하려는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인권신장을 위한 대국적인 성찰과 구체적인 행동이 정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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