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마당] 영문주소 표기 서양 흉내내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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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얼마 전 한국어.영어 동시통역사가 되겠다며 공부하고 있는 친구의 딸아이를 만났다. 네살 때 미국에 건너가 대학을 마치고 동시통역사가 되기 위해 다시 고국에서 유학 중인 아이였다. 그 아이가 "왜 한국 사람들은 주소를 영문으로 쓸 때 이상하게 쓰느냐"고 물었다.

어느 나라 말로 적든지 주소가 통용되는 곳은 한국인데 한국 사람들이 알아듣기 쉬운 순서로 쓰면 되지, 왜 굳이 서양식을 흉내내 적느냐는 지적이었다.

얘기를 듣고 회사로 돌아와 갖고 있는 명함들을 살펴봤다. 진짜 그 아이의 지적대로 대부분의 회사가 주소를 한글로는 "서울 ○○구 ××동"이라고 적으면서 영문으로는 "××동, ○○구, 서울, 대한민국"이라고 적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 중 영어로 자신의 이름을 말할 때 성을 뒤로 돌려 서양식으로 소개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고유명사인 이름은 세계 어느 곳에서든지 우리 식으로 불려야 한다는 주체의식이 생겨나면서 요즘은 그냥 성과 이름 순으로 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주소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주소 쓰기에도 주체의식이 좀 필요할 것 같다.

윤태원.인터넷 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