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자세한 얘기는 있다가 하자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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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남성은 대체로 체계화를 잘하고 여성은 의사소통과 공감 능력이 발달했다. 여자들이 만나서 장시간 수다를 떠는 것도 모자라 “자세한 얘기는 이따가 통화하자”며 헤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자세한 얘기는 이따가 통화하자”를 문자로 보낼 때 ‘이따가’를 ‘있다가’로 옮기는 경우가 많다. ‘있다’란 말이 있으니 ‘있다가’가 맞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뒤에’라는 의미의 부사 ‘이따가’가 와야 자연스럽다. ‘이따가’ 뒤에는 꾸밈을 받는 서술어가 온다.

“있다가 인사동 찻집에서 만나” “운전 중인데 있다가 전화하면 안 될까?” “손님이 있다가 또 들른다고 했어요”와 같이 쓰면 안 된다. 모두 ‘이따가’로 고쳐야 한다. ‘이따가’도 어원적인 형태는 ‘있다가’이지만 본뜻에서 멀어졌으므로 소리 나는 대로 적도록 규정하고 있다.

‘있다가’는 ‘있다’의 어간 ‘있-’에 어미 ‘-다가’가 붙은 형태로 쓰임이 다르다.

‘있다’는 어떤 장소에 머물다, 존재하다, 어떤 상태를 계속 유지하다 등의 의미로 사용한다. ‘-다가’는 어떤 동작이나 상태 따위가 중단되고 다른 동작이나 상태로 바뀜을 나타내는 연결어미다. 이 어미가 붙으면 앞의 움직임이나 상황이 달라짐을 나타내는 다른 서술어가 뒤따른다. “조용히 쉬고 싶다며 보름가량 여기에 있다가 갔어요” “늘 곁에 있다가 없으니까 허전하다” “가만히 있다가 고함지르는 바람에 놀랐다”처럼 쓰인다.

문맥을 살펴보고 ‘잠시 후에’의 뜻이면 ‘이따가’를, ‘~에 머물다가’ ‘에 존재하다가’ ‘어떤 상태를 유지하다가’의 뜻이면 ‘있다가’를 사용하면 된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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