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탕수육 ‘부먹 vs 찍먹’ 논쟁까지 벌이는 인터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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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도다리의 눈이 왼쪽에 몰려 있을까? 오른쪽에 몰려 있을까? 예전에는 술 마시다 이런 논쟁이 생기면 횟집으로 자리를 옮겨 결판을 냈다. 지금은 호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인터넷을 검색한다(도다리는 도!다!리! 세 글자니까 오!른!쪽! 3글자로 외우라는 말까지 있다. 도다리는 오른쪽에 눈이 몰려 있다). 이제 휴대전화가 백과사전이고, 인터넷이 판관이 됐다.

사람 사는 곳에 논쟁은 어디나 있다. 주장을 다투기도 하고 사실을 따지기도 한다. 특히 그런 세상을 담아내는 인터넷의 논쟁은 백가쟁명이 아니라 만가쟁명이라 할 만큼 다양하다. 애플빠(애플 제품 선호 소비자)와 삼성빠(삼성 제품 선호 소비자)의 논쟁, 전자담배 유해 논쟁, 진화론과 창조론 등은 단골 소재다. 심지어 초등학생들이나 할 법한 사자와 호랑이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도 잊을 만하면 거론된다.

인터넷에서 논란거리가 될 만한 가십이나 주제를 ‘떡밥’이라고 하는데 물고기 미끼처럼 사람들을 자극해 반응을 일으키는 수단이란 뜻이다. 다소 조롱 섞인 비유로 볼 수도 있겠지만 네티즌들은 특유의 유머 코드로 받아들이는 단어다. 인터넷 3대 떡밥으로 불리는 주제는 정치·종교·군대(또는 성) 문제다. 이 주제로 ‘떡밥’을 던지면 최소한 한 개 이상의 댓글이 붙는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정치나 종교 같은 주제는 열성적인 지지자와 비판자가 많아 논쟁이라기보다는 그저 싸움이 되기 쉽다.

대신 논쟁을 할 거리조차 안 되는 게 주제가 되는 경우도 많다. 탕수육을 소스에 찍어 먹느냐, 부어 먹느냐는 ‘찍먹부먹’ 논쟁도 그런 것이다. ‘개취(개인마다 취향이 다름)’라며 논쟁을 회피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기에도 여전히 찬반 옹호자가 있다. 이 논쟁에는 유명 연예인들까지 지지·거부자로 편을 갈라섰고 다양한 이론적 논거와 주장이 쏟아졌다. 어떤 이는 이를 조선시대 예송 논쟁에 빗대기도 했다. 일반 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는 등한시한 채 명분과 권력투쟁에만 치중했던 조선시대 지배계급 논쟁 같다는 거다. 결국 이 논쟁은 중화요리 전문가의 답변으로 정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찍먹도 아니고 부먹도 아닌 볶먹(소스에 볶아 먹는 것)이 정답이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논쟁은 아니지만 ‘인터넷 3대 쓸데없는 걱정’이 있는데 첫째가 전 남친, 전 여친이 잘살고 있는지에 대한 걱정이다. 둘째가 연예인과 유명인의 돈벌이 걱정이다. 셋째는 논란이 분분하다. 정치인 걱정, 재벌 걱정 등 여러 후보가 있는데 그중에서 ‘내가 그만두면 우리 회사는 어떻게 하나’란 걱정이 가장 유력하다. 위 3가지는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인터넷 격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온라인에선 논쟁과 함께 자주 등장한다.

이런 논쟁과 걱정을 자주 하다 보니 숙어가 된 용어도 생겼다. ‘기둥 뒤에 공간이 있다’는 인터넷에서 꽤 유명한 말이다. 사연은 이렇다. 한 네티즌이 운전석 문을 벽에 바짝 붙여 주차시킨 차를 사진으로 찍어 올렸다. 당연히 예상한 대로 ‘운전자는 어떻게 내렸을까?’라는 댓글과 논쟁이 이어졌다. 이때 한 네티즌이 ‘기둥 뒤에 공간이 있다’고 설명을 달았다. 하지만 이를 못 본 다른 네티즌이 계속 ‘운전자가 내리기 불편했을 것’ ‘조수석으로 내렸을 것’이라고 글을 올리자 답답해진 네티즌들이 이를 설명하기 위해 손그림, 3차원 도면에 이어 심지어 입체 동영상까지 만들면서 웃음을 준 사건이다. 그 뒤 ‘기둥 뒤에 공간 있다’는 말은 무엇인가 자신만이 알고 있는 정답이 있거나 열심히 설명해도 남들이 이해를 못하는 답답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빗대 인터넷에 자주 등장한다.

사실 인터넷의 이런 논쟁거리는 시비를 가려 승부를 결정짓겠다는 무슨 비장한 결의가 있다기보다 그저 대부분 심심풀이다. 그러다 보니 참가자들 스스로도 ‘아이고, 의미 없다’며 gg(인터넷 용어로 그만, 포기라는 뜻)를 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누군가 너무 지나치게 진지하게 나오면 ‘진지빨’이라고 놀리기도 한다. 그림이나 설명에 ‘쓸고퀄’이라는 말도 쓰이는데 ‘쓸데없이 고급 퀄리티’라는 말을 줄인 것이다.

인터넷에서 논쟁이 놀이가 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공평하게 말하고 상대를 받아들이면서 결과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 시대는 토론의 여유, 대화의 배려를 체험하는 시대다. 아직 우리는 그 초보 학습생들이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