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과 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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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작품에 값을 매긴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 한 예술에 대한 금전적 평가이기도 하다. 한 화가의 작품 값이 얼마다 하면 신경을 바싹 곤두세우고 『나는 얼마를 받아야만 한다』고 서슴지 않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은 것도 다 이런 까닭에서다.
이런 태도가 과연 옳은 것이냐 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이같은 분위기로 말미암아 작품에 대한 순수한 예술성을 논하기 보다 금전적 평가에만 모든 것을 내걸어 소위 「인기작가」만을 찾는 미술인구도 늘어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순환과정 속에서 어느덧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곧 돈」이란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됐고, 그 어렵던 시절 흔했다던 「그림 인심」은 잘 산다는 요즘엔 구경조차 하기 어려워졌다. 작품 하나를 선뜻 내주기보다 오히려 으리으리한 요정에 가서 상다리 휘어지게 대접 한번 하는 것을 택할 정도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그거야 시비를 가릴 수는 없겠다. 일설에 의하면 화가를 돈에 눈뜨게 한 것은 다름 아닌 화상이었다고도 하고, 미술시장에 투기꾼을 불러들인 것도 그들이라고도 하니 말이다.
어쨌든 작금의 이러한 사정은 거의 순치 될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아니 어쩌면 더욱 심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정작 그 그림을 사람하고, 갖고싶어 하는 가난한 대중과는 점점 더 거리를 넓혀가기만 하는 실정이다.
이런 판국에 난데없는 뒷 얘기가 전시회 막이 내린 한두달 후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내렸다.
장삿속도 밝아 한 재산을 모았다고도 일컬어지는 도예가 모씨가 그 작품 값에 1천만∼1천5백만원이라는 엄청난 값을 매겨놓고 그 값에도 좋다며 예약하고 작품을 가지고 간 10여명에게 이번엔 돈을 전혀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현대 도예 한 점에 1천5백만원이란 금전적 평가도 놀랍기만 『내 작품을 순수하게 좋아해서 갖기를 원하는 이에겐 돈이 필요 없다』는 작가의 무욕은 더욱더 놀랍다.
그의 말마따나 입술이 터지는 고통을 참아가며 변신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작품들이어서 그랬을까.
지난날 일상적이었던 얘기가 오늘에 와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진다는 현실이 미담 뒤의 앙금으로 남았다. <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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