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송금 핵심 4인의 수감표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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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북 송금 의혹사건으로 구속된 핵심 4인방의 서울구치소 수감 생활은 4색(色)이다. 30일 현재 수감일수는 한광옥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78일(5월 14일 구속), 이근영 전 금융감독위원장 68일,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 61일,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49일째.

나라종금 사건으로 먼저 구속된 한광옥씨를 빼고는 수감 이유가 개인 비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들은 비교적 당당하다. 하지만 건강과 감정 상태는 제각각이다.

이기호씨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일반 면회객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가족들의 면회조차 그리 반기지 않을 정도"라고 측근은 전한다. 특히 한평 남짓한 독방에 갇혀 있으면서 폐쇄공포증 비슷한 증세도 나타났다. 그 때문에 그는 얼마 전 감방을 옮겼다. "창밖이 다른 건물에 가려 있어 답답하다"는 호소에 구치소 측이 '햇볕정책'을 쓴 것.

그는 창밖이 탁 트인 독방으로 옮겨진 뒤부터 차츰 회복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인접촉을 꺼리고 매일 의사와 면담해야 할 정도의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그는 최근 면회를 간 측근에게 "방을 바꾸고 났더니 한결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반대로 이근영씨는 최근 햇볕이 덜 드는 방으로 옮겼다. 눈병 때문이다. 왼쪽 눈에 '망막 황색변성'이라는 질환이 생겨 지난 7일 수술을 받았고, 의사의 지시에 따라 가급적 빛을 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운동시간에도 스키용 고글이나 선글라스를 끼고 다닌다. 이 때문에 멀리서도 눈에 잘 띄게 됐고, 이 점이 그를 더욱 신경 쓰이게 한다고 측근은 전했다.

그는 눈 말고도 왼쪽 무릎에 물혹이 생겨 걷기조차 힘든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달 물혹 제거 수술을 받고 한달 정도 입원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보석 신청을 한 상태지만 아직 결정이 나지 않았다.

가장 수감생활을 잘 하는 사람은 박지원씨. 그는 하루 한 시간의 운동시간 내내 쉬지 않고 운동장을 달리거나 줄넘기를 한다.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이기호.이근영씨와는 딴판이다. 그래선지 수감 전 75~76㎏이던 몸무게가 71~72㎏로 줄었다고 한다. "술을 안 마시고 운동을 한 덕분"이라고 측근은 설명한다.

朴씨는 달리기를 하면서 이따금씩 "어잇-"하고 기합 비슷한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구치소 관계자는 "다른 수감자들에게 불쾌감을 줄 정도의 소리를 지르면 제재 대상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맑은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식사도 잘 하고 틈틈이 책도 열심히 읽는다.

그런 그지만 유독 1백50억원(현대 측이 朴씨에게 줬다고 주장한 비자금) 부분에 대해선 "경련을 일으킨다"고 한다. 한 측근은 "면회객들에게 밝은 미소를 보이다가도 그 얘기가 나오면 '끝까지 뇌물 부분의 결백은 밝혀내겠다'며 단호해진다"고 전했다. 대신 대북 송금 사건에 대해선 떳떳해한다는 것.

송금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한광옥씨는 면회객들에게 임동원 전 국정원장(불구속 기소)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토로했다고 한다. 林씨가 특검에서 "불법 송금 사실을 보고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를 묵인했다"고 한 진술을 몹시 언짢아한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님 도움으로 정부에서 일한 사람들이 이제 와서 그럴 수 있느냐"면서 "자기가 책임지면 될 일을 회피하고 있어 섭섭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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