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고적발굴 성과 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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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신라의 왕성이었던 경주 월성일대에 대한 발굴조사가 착수 1년을 넘기면서 당시의 관청 건물터·토기 저장 창고가 발견되고 토기·금속류의 다량 발굴이 이루어지는 결실을 맺고있다
문화재연구소 경주고적발굴조사단(단장 조유전)에 의해 장기계획으로 추진되고 있는 월성 일대 발굴은 우선 성을 둘러싸고 있던 해자 조사와 첨성대 안압지와 월성 사이 지역에 대한 발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성을 보호하기 위해 성 둘레를 파서 물을 채운 해자는 월성의 경우 길이 1백m,폭 25∼50m의 크기로 10여 곳이 만들어졌으며 그것이 서로 연결된 것이 아님이 밝혀졌다. 즉 해자들이 블록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5∼10m 정도의 폭으로 땅으로 연결된 성과외곽과의 연결통로가 있는 모습이었다.
해자는 또 석축이 아니고 자연상태를 이용한 것이었으나 다만 성과 왕자가 기거했던 동궁이 있었던 안압지를 연결하는 곳의 일부에서만 석축을 한 해자가 발견되었다.
월성의 둘레는 약2km.
그중 남천이 흐르고 있는 남면을 제외한 3면에 해자가 둘러져 있다(약1.2km)발굴조사단은 이 월성의 해자는 통일신라 이전에만 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고 통일신라기에 이르면 성이 크게 넓어지면서 현재보다 성터에서 훨씬 먼 외곽에 해자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성의 외곽에 관청 등 주요건물이 있었음은 당연하다 이번 발굴에서 큰 규모의 건물 터가 많이 발견되었다 .월성에서 계림을 지나 첨성대를 미처 못 간 곳에서 29간(길이85m·폭6m)의 건물터가 나왔다. 이 지역은 약 7천 평의 건물터가 있어 다른 건물의 모습도 발굴과 함께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첨성대와 계림사이에 초석 4개가 일직선으로 노출되어 있어 현재 조사가 진행 중에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29간 건물은 기둥 사이가 동서 2백 70cm·남북 2백70cm였고 초석은 직경 1백10∼1백20cm의 대형이었다.
해자지역에서 발견된 토기창고에서는 토기가 3∼4겹으로 싸여있어 큰 규모의 창고임을 알게 했다.
현재까지 월성일대 발굴에서는 l천3백점의 기와류,5백65점의 토기·자기류, 89점의 금속류, 기타 2백35점등 2천1백89점의 출토 유물이 나왔다. 중요 유물로는 유리구슬 19점과 삼채토제방울·토제말·보상화문전등이 나왔다. 삼채토제 방울은 처음 원숭이의 모습을 한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학자들은 최근 들어 새 모양인 것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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