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미국에서의 정전 50돌 행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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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미국에선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라고 말한다. 2차대전처럼 엄청나지도 않았고, 베트남전처럼 찬반의 날선 대립이 있었던 것도 아니며, 3만이 넘는 미군이 숨졌지만 승리도 패배도 없이 어정쩡했던, 그래서 잊고싶은 전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7월 27일로 정전 협정 50주년을 맞이한 올해, 워싱턴에선 '전쟁을 기억하는' 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지난 25일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참배했고 26일엔 딕 체니 부통령이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아 한국전에서 숨진 무명 용사 묘역에 헌화했다. 27일에는 참전 22개국 대표들이 도열한 가운데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과 피터 페이스 합참부의장, 참전용사 에드 맥마흔 예비역 대령이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헌화했다. ABC.NBC.CNN 등 방송사들도 한국전을 되새기는 특집방송을 냈다. 한국전 기념 우표까지 발행됐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역시 참전용사들이다. 27일 오전, 1백여명의 참전 용사들이 빛 바랜 군복을 깨끗하게 다려 입고, 한반도 또는 태극 문양을 새겨넣은 모자를 쓰고, 워싱턴을 가로질러 컨스티튜션 애버뉴를 행진했다. 20대의 새파란 청년에서 70. 80대가 되기까지 겪은 50년 세월의 주름을 감출 수 없는 듯 일부는 다리를 절었고, 누구는 숨을 헐떡이며 땀을 흘렸지만 감개무량한 표정이 역력했다. 28일에는 참전용사 51명이 워싱턴 한국 문화원을 찾아와 '끊을 수 없는 한국과의 인연'을 되새기기도 했다.

모처럼 한국에 우호적인 분위기가 며칠간 워싱턴을 휩쓸었다. 그래서 "이럴 때 한국 국방장관이나 참모총장이 와서 감사를 표시하고, 한.미 우의를 다지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는 아쉬움이 흘렀다. 남들에겐 잊혀지지 않은 한국전쟁이 정작 한국에서는 가장 많이 잊혀져 있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일 것이다. "남북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까"라는 쑤군거림도 있다.

하지만 6.25가 중국과 소련을 끌어들여 북한이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눈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덮을 수는 없다. 전쟁은 잊혀진다 해도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수많은 한국군과 외국 참전 용사들의 희생에서 움텄음을 결코 잊을 수는 없는 것이다.

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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