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인의 「자부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얼마전 한국연극협회와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가 공동으로 조사한「우리나라 연극인의 의식및 실태조사」에 의하면 연극인의 80%가 월평균수입이 10만원 미만이라고 한다.
또 연극인에 대한 사회의 평가에 대해서는 82%가 중간정도 혹은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활동에 대해서 연극인들 자신은 71%가 자부심을 갖고있다고 응답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연극인이 최저생계비도 안되는 수입에도 불구하고 연극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황금만능의 요즘 세태에 이런 결과로 나타난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하고싶은 일을 하고있다는데서 오는 만족일까?
어차피 예술가는 가난하다는 체념에서 비롯되는 순응일까? 아니면 그러한 체념을 지난 어쩔수 없는 낙관일까?
나 역시 연극하는 사람으로서 연극으로는 먹고 살지 못한다고 일찌감치 터득한바 있지만, 그러나 연극만을 전문적으로 할 경우 연극이 밥먹여 주어야 한다는 주장을 꺾고 싶지는 않다. 그래야「전문」이라는 단어가 성립이 된다. 그래서 이런 자부심의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더욱 기이하게 느껴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공연되고있는 연극의 절반 이상이 번역극이고 그 대부분은 지금 이 땅
의 우리네 삶과는 무관한 내용들이다. 때로는 연극의 내용이 우리의 삶과는 하도 동떨어져서 도대체 저 연극을 왜, 누구를 위해 공연하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연극의 오락적 기능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풍부하게 해줄수 있는 진정한 오락으로서의 연극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다시, 그 자부심의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같은 연극인으로서 다행스럽게 여겨지면서도, 혹 연극을 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예술행위로만 보는 천진스러움이 그 자부심을 뒷받침해주고 있지 않을까 혼자 걱정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