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실 수 없는 수도 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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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에서는 한강이 되살아나 물고기가 늘어나고 유람선이 떠다닌다. 서울의 바로 인근지역에서는 하천이 썩어 수도 물을 마시지 못하고 농사도 망치고 있다. 웃지 못할 난센스다.
어제 중앙일보 사회면은 경기도 포천 일대의 충격적인 수질오염 실태를 전하고 있다. 이 지역 상수도 취수원인 포천 천이 부근에 몰려 있는 50여 개 공장들이 쏟아 내는 산업폐수로 오염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수돗물에서 악취가 심해 먹지 못하고 별도로 지하수나 약수를 사 먹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오염된 하천 물로 농사를 지었더니 소출이 이전보다 40∼70%가 줄 정도였다. 주민들은 피부병까지 앓고 있다.
4∼5년 전 만해도 맑기만 하던 하천이 서울의 공해공장들이 이곳으로 이전해 온 3∼4년 전부터 미생물도 못사는「죽음의 강」으로 변한 것이다.
공해를 토해 내는 공장들을 서울에서 지방으로 옮기도록 한 것은 1천만 서울시민이 이용하는 한강의 오염을 줄이자는 목적에서 일 것이다.
그러나 1천만 서울시민의 환경정화를 위해 1만여 포천주민이 희생 당해야할 이유는 없다.
1천만이건 1만이건 똑같은 세금을 내는 국민임에는 다를 바가 없다. 국가로부터 환경과 건강을 보호받을 권리 또한 그 비중에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이 지역 주민들은 당국이 폐수를 쏟아 내는 공장들을 단속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당국의 불공평한 처사는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문제의 여론화에 민감한 서울에서만 말썽이 일어나지 않으면 괜찮다는 사고방식은 더 큰 근본문제를 호도 하려는 무책임하고 안이한 가식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이들 공장들이 공해방지 시설을 해 놓고도 당국의 눈을 피해 가동하지 않고 있어 생긴 결과라 한다. 당국은 감시 인력의 부족을 내세울지 모르나 이건 변명이 안 된다.
하천이 썩고 수도 물에서 악취가 물씬거릴 정도라면 인근 공장 전체가 폐수를 쏟아 낸다고 봐야 하며 이들에 대한 단속도 일률적인 엄단으로 다스려야 옳을 것이다. 3∼4년 동안이나 폐수 방류를 방치했다면 이는 당국자의 직무유기나 배임의 혐의마저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본다. 엄중한 문책이 있어야겠다.
문제는 이러한 사례가 포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얼마 전까지 만 해도 한강지천이 그랬고, 부산 수영천이 그랬으며, 그밖에 지방하천 대부분의 오염을 의심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악취 나는 수도 물 대신 약수를 사 마시고, 썩은 하천 때문에 농사를 망치고 있는 주민들은 한강의 유람선과 서울의 화려한 축제를 TV중계로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 당국자들이 심각하게 성찰해야 한다.
당국이 산업폐수를 쏟아 내는 공장들을 대도시에서 지방으로 내보내는 것으로 할일 다한 것처럼 생각하니 어찌 포천 사태 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공해를 단속하는 눈이 마땅히 공해공장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 아닌가.
서울에 비해 지방에서는 공해에 대한 인식이 훨씬 낮다. 따라서 여론에 의한 단속도 자연히 소홀하다.
이런 약점을 이용하여 당국은 공해업소를 지방으로 이전시키는데 그치고 공해업소들은 대도시에서라면 마땅히 갖출 공해 방지시설을 갖추지 않으면 포천의 악몽은 머지않아 전국에 확산되고 말 것이다.
중앙의 환경보호 당국과 지방관청들은 지금부터라도 포천을 거울삼아 산업폐수의 근원적인 단속을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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