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싸움|허남진<정치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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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개헌특위가 정말 갈 돼야 한다는 국민적 바람과는 달리 공청회 운영문제조차 합의를 하지 못해 일정까지 잡아 놓은 부산공청회의 연기 사태까지 빚고 있다.
『대 강당에서 하자』『소 강당이면 어떠냐』『생중계 해야 한다』『방송국 사정에 따라야지』.
헌특의 여-야 간사들은 며칠을 두고 이런 입씨름을 벌인 끝에 26일 전체회의는 개헌안에 대한 질의·답변도 하지 못했다. 또 문제의 공청회에 대해 여당 측은『그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것』이며 따라서 『공술 인은 해당지역 인사』라야 하고 공청회는 국회 활동의 연장이므로 대 집회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야당은 『우선 공청회라면 많은 사람이 참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모처압력」등의 표현을 써 가며 지방에서의 공술인 선정에 따른 애로를 제시하면서 서울의 대학 교수를 부산 공청회 공술 인으로 선정했다.
민정당은 공청회를 공술인의 공술을 헌특 위원이 듣는 행사로 규정하고 있으나, 신민당은 공술내용을 헌특 위원은 물론 다수의 방청인이 듣도록 하는 쪽에 더욱 신정을 쓰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한쪽은 행사를 축소화하려는 인상을 풍기고 있고 한쪽은 대형화하여 공청회를 통한 자체 안 홍보 및 개헌열기 조성을 꾀하려는 인상이다.
TV중계에 대해 야당 측이 굳이 생중계를 주장하고 여당이 여기에 소극적인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헌법개정이라는 막중한 과제를 다루는 여야가 이런 문제로 일정에 차질을 빚고 이견의 목소리가 그토록 떠들썩하게 국민에게 전달되게 하는 일이 과연 온당한 것일까.
여-야 모두 말끝마다 당리당략을 떠나야 한다고 되뇌고 합의 개헌에 이를 시간이 짧다고 하면서 실상은 지극히 당리당략적인 지엽문제로 국민이 보기에는 속 좀은 다툼을 벌이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무엇보다 보통사람이 납득할, 이상해 하지 않을 상식적인 자세가 아쉽다. 대강당이냐, 소 강당이냐 로 다툴게 아니라 기왕이면 좀 넉넉한 장소에서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상식인 것 같고, 부산에서 한다면 부산사람이 나서는 게 또 상식인 것 같다.
중계문제도 상대적인 것이다. 가령 공청회가 있는 날에 개각 같은 중대사안이 있다면 여야가 아무리 합의해도 공청회 뉴스가 크게 다뤄지긴 어려울 것이다.
여-야는 더 이상 꾀죄죄한 주변문제에 얽혀 본질문제를 외면하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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