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의 심기일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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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 염천에 국민들의 마음은 더욱 무덥고 답답하고 짜증스럽기만 하다. 한줄기 소나기라도 쏟아졌으면 하는 심정이다.
그러나 문제는 소나기쯤에 있지 않다.
독립기념관의 화재며, 부천서 사건하며, 미국의 잇단 무역압력은 소나기쯤으로 잊혀지거나 위안을 받을 문제가 아니다.
이들 문제는 하나같이 우리사회의 부조리와 무책임, 독선, 그리고 적부주의를 증 거하는 불쾌하고 석연치 않은 일들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행정관료들의 책임과 권력이 어쩌면 그렇게 왜곡될 수 있는지, 상식의 선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우리는 앞으로 건너야 할 강도 많고 산도 많다.
개헌작업 하나만 놓고 보아도 권력구조를 어떻게 할 것이냐 만이 문제가 아니다. 「민주헌법」에 부수되는 각종 법안이 2백여 개나 된다는 분석도 있었다.
개헌만 잘해 머리만 그럴듯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수족이 있어야 민주헌법은 운신을 할 것 아닌가.
이런 문제들은 국회 하나만 밤새껏 불을 밝히고 있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행정실무가 뒤따라야 한다. 그 행정실무는 몇몇 관리의 페이퍼 워크(서류작업)로 될 일이 아니다. 여기엔 적어도 해당분야의 국무위원급이 자신의 정치철학과 신념과 역사적 책임의식을 갖고 일을 수행해 가는「큰 그릇」의 구실을 해야 한다.
더구나 지금은 제5공화국의 출범을 이끈 전대통령의 천기 후반기에 있다. 집권자로서는 당연히 대미와 유 종의 미를 장식해야 할 것이다. 그 마무리 작업은 역시 그릇도 크고, 대 소 고 처에서 먼 앞도 내다볼 수 있는 그럴듯한 인물들이 맡아야 한다.
그동안 잘된 일, 잘한 일들은 마땅히 계속해서 잘 굴러 갈 수 있도록 튼튼한 궤도를 깔아 주어야 하며 잘못된 일들은 마땅히 방향을 틀어 잘되는 쪽으로 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 중에는 대담하게 정리하고 폐기해야 할 일들, 문제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최근에 잇따른 정치·경제·사회 문제들은 그대로 덮어두거나 시간에 씻겨 잊어버리기엔 너무 충격이 컸다. 인천사태가 예외가 아니며, 그에 따른 정치적 옥신각신의 파동들 역시 적지 않은 문제였다.
「부천서 사건」으로 불리는「여대생 성폭행 문제도 엄연히 사회의 의혹이 있는 한 그것을 깨끗이 씻을 수 있는 무슨 해명이 있고, 또 그런 물의에 대한 보다 명확한 문책도 있어야 할 것이다.
독립기념관 화재문제는 더 이를 데 없다. 그것이 4천만 국민의 성금이오, 그 모티브가 일제에 대한 역사적 각성과 민족적 자존에 있었던 것을 상기하면 그럴 수가 없다.
적어도 기념관 관장의 책임을 말은 사람이나 그 밖의 책임자들은 현장에 목 침대라도 놓고 침식을 하며 크고 작은 일들을 챙기고 감독했어야 옳다. 오며 가며 먼 눈으로 작업현장을 구경하는 자세로는 국민성금의 전당을 짓는 성의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
이런저런 문제들로 보나, 정치적 상황으로 보아 국정의 심기일전은 국민적인 요청이다. 이제까지는 『개각해 봤자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타성적 평판도 없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자조적, 방관자적 자세를 보여줄 때가 아니다. 우리가 언제 오늘과 같은 변환의 시대, 국민적 요구 충만의 시대를 경험했으며 경제적으로도 외국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살아본 적이 있는가.
정부는 그런 관점에서 오늘의 이 침통하고, 답답하고, 불쾌한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고, 생기를 불어 넣어 줄 수 있는 결단과 지혜를 발휘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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