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는 시각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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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기본 형식에 따른 가락짓기만은 꽤 익숙해 있는 줄로 믿었던 제자 나송군이 내게 뜻밖의 실망을 안겨다주었다. 한말로 우수률과 음수률의 미묘한 차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진단될 성직의 것이었다.
가령 그의 어떤 작품 중에는 종장을 「노래할 수도 없는 빛깔이 선율 되어 흐른다」 라거나, 「가슴에 핀 파란 불빛/내 우주를 밝힙니다」 따위로 처리한 예를 만나보게 되는 터였다.
내가 쓴 입맛을 다시며 독백하듯 중얼거렸다. 『별수 없이 결국은 함정에 빠지고 말았군!」
나송군이 못내 의아한 눈초리로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선생님, 뭐가 된통 잘못된 것입니까?」
「잘못되다마다. 종장 대문에 자네의 사조가 큰 병을 앓고 있네 그려. 자네는 시조의 형식이 글자 수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사실만 알았지, 음수에 의해 그 정형의 가락이 이루어진다는 진리를 잠깐 외면하고 있었군.」
이렇게 전제하고 나서 나는 그에게 이른바 「자수률과 음수률의 함수관계」 에 입각한 여러 국면을 일깨워 주었다.
자수에 의해 시조의 기본 형식이 지켜져야 함은 더 이를 나위가 없지만, 그것이 음수률과 맞아 떨어져야만 온전하다는 사실, 더 적극적인 차원에서 시조는 다분히 형식에 담기는 율이 아니라 율에 힘입어 이룩되는 형식이라는 사실 등을…….
그리고 예의 그 「노래할 수도 없는 빛깔이 선율되어 흐른다」 의 경우는 3· 7· 4· 3이 아닌 7· 3·4·3조며, 「가슴에 핀 파란 불빛/내 우주를 밝힙니다」 의 머릿구도 3·5가 아니라4·4조라는 점을 밝히 깨우쳐 주었다-.
이번 주의 작풍들 중에도 나송군이 떨어진 이 함정에 마지 약속이나 하듯 떨어진 것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의상대의 해돋이』 와 「농가』 가 그것인데, 그 종장들이 각각 시각적 자수의 배열과는 달리 가락에 결정적 파탄을 불러옴으로써 지켜야 할 기본원칙을 깨뜨리고 있는 것이다. 더우이 이 작가들이 그 기량에 있어 『강』『입석리 근경』등의 작가들보다 한 수위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렇듯 우연찮은 실수 (?)가 자못 애석하기 만한 노릇이다. <박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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