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해프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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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집이 자네들꺼 아니잖아. 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거야.』
『그때는 그려도 좋다고 허락하셨었잖아요.』
『어둡고 거칠어서 벽화로선 마땅치 않아요.』
『통일의 기쁨을 나타냈을 뿐입니다. 자꾸 이상하게 보니까 그렇지요.』
9일 하오4시, 서울 신촌역앞 광장.
벽화를 지우기 위해 페인트통과 롤러를 들고 몰려온 구청직원들과 자신들이 그린 그림을 지키려는 대학생사이에 밀고 당기는 몸싸움이 벌어지는 가운데 집주인측과 학생들이 실랑이를 벌였다.『졸업을 앞두고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모두 서양학과 졸업반인 이들 6명의 대학생이 벽화작업을 시작한 것은 지난달 7일.
매일 6시간씩 강행군을 했고 일정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1시간 지각에 1천원의 벌금」을 내는 규칙을 만들어서 서로를 채찍질하기도 했다.
『그래도 벽화를 그려놓고 보니 시골 간이역 같던 신촌역주변이 조금 살아나는 것같아 좋아했었읍니다.』
그러나 당국에선『내용상 문제가 있다』며 철거를 강행, 결국 한달여에 걸쳐 그려진 벽화는 차례로 지워진채 흰페인트로 어지럽게 덧칠돼 보기흉한 모습으로 남았다.
도시환경벽화는 한정된 관람객이 아닌 광범한 대중을 상대로 하는 대상의 광범성이 있기 때문에 당국에서 그림의 내용을 규제할 필요가 있다하더라도 일방적 판단으로 강행해선 안되며 예술적 안목을 가진 심의회를 구성, 맡겼다면 이같은 해프닝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느낌이었다.<민병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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