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기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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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기후는 우리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문명 발달 전에는 기후조건이 인간의 생활양식을 좌우했다고 볼 수 있다. 지금도 기상이변은 큰 위협이다.

기후와 문명의 관계에 대한 연구는 유럽의 식민지 개발 이후부터 활발해진다. 이것이 때로는 지나쳐 기후가 민족의 우열을 결정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기도 한다. 유럽의 기후를 문명발전에 이상적이라고 전제하고 이와 다른 기후의 국가나 민족은 열등하다고 추론하는 식이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로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을 제시한 몽테스키외(1680~1755)도 이런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법의 정신'에서 "심한 더위는 사람의 힘과 용기를 위축시키고 추운 풍토는 사람에게 어렵고 위대하고 대담한 행동을 가능케 하는 육체적.정신적 능력을 준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리에 따라 몽테스키외는 "한반도의 남부 민족은 북부 민족만큼 용감하지 못하다"고 단정한다. 당시 한반도를 직접 찾아왔을 리 없는 그가 머릿속에서만 내린 '용감한' 결론이었다. 기후조건을 과대평가한 18세기 유럽 지식인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현대 스포츠 의학에 따르면 섭씨 15~20도가 사람에겐 가장 운동하기 좋은 기온이라고 한다. 이 온도에선 근육과 두뇌가 활발히 움직인다는 것이다.

또 영국 과학자들은 사람이 더위를 먹어 사망할 수 있는 기온은 섭씨 19도부터라고 분석한 바 있다. 26도 이상에서 오래 운동하면 체온을 유지하기 어렵다고도 한다.

하긴 너무 덥거나 추운 곳에선 사람들이 오랜 시간 한 데 모이기가 어렵다. 토론하거나 정보를 전달할 기회와 폭도 상대적으로 적어진다는 얘기다. 정치 참여를 상징하는 공간인 광장도 찾아보기 힘들다.

극서(極暑) 또는 극한(極寒)지역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꽃 핀 사례가 드문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기후 하나로 복잡한 인간세계를 단순화해 설명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는 듯하다.

한국은 더위와 추위의 교차가 심하다. 연중 기온차가 40도를 넘는다. 몽테스키외라면 "그래서 사회경제적으로 기복이 심하다"고 말할 법도 하다. 곧 장마가 걷힌다. 8월 초순엔 예년보다 더 무더워진다고 한다. 더위 탓에 힘과 용기를 잃고 주저앉는 일은 없어야겠다.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