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사랑·지혜가 싱가포르 간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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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샴쌍둥이 부모는 왜 국내 의료진을 마다하고 이역만리 싱가포르를 찾았을까.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이들의 수술 실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샴쌍둥이 분리수술은 혈관과 신경의 주행방향 등 철저한 사전검사와 혈관 손상을 최소화하는 수술 솜씨, 수술후 재활 등 첨단기술이 집약된 현대의학의 정수다.

샴쌍둥이 분리수술은 스타를 만들어낸다. 빈민가 출신 흑인 의사인 벤 카슨이 33세에 세계 최고의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 소아신경외과장으로 발탁된 이유도 1987년 세계 최초로 머리가 붙은 샴쌍둥이 수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래플스 병원 역시 2001년 네팔 형제 분리 이후 잇따른 수술 성공으로 명성을 쌓았다.

지금까지 두각을 보이지 않던 싱가포르 병원이 어떻게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을까. 정답은 정부에 있다. 불과 보름 전 이란의 샴쌍둥이 자매 분리수술이 실패로 끝난 뒤 싱가포르는 초상집 분위기였다.

한창 비난의 여론이 비등할 때인 지난 9일 고촉통 총리는 래플스 병원 의사들에게 직접 공개 편지를 썼다. '비록 실패했지만 선진국 일류병원도 포기한 세계 최초로 머리가 붙은 성인 샴쌍둥이 분리수술에 도전한 패기에 감사를 표한다'는 내용이었다.

싱가포르 정부는 해마다 68억달러(약 8조원)란 천문학적 예산을 기초의학에서 임상까지 첨단 연구에 쏟아붓고 있다. 2015년까지 '아시아 의료의 허브국가'로 발돋움해 세계 각국의 부자 환자들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에서다.

첨단 의학 육성으로 의료의 국가경쟁력을 키우기보다 보험 재정 안정을 위해 값싼(?) 의료분배에만 골몰하는 우리 정부가 되새겨봐야 할 대목이다.

홍혜걸 의학전문기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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