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화의 절상압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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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경제계 일각에서 대미 무역 흑자 국들에 대해 통화가치 절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비록 그것이 수출경쟁에 뒤진 일부 미국 제조업계의 한정된 목소리에 불과하지만, 미국의 파상적인 무역공세와 보호주의 압력에 시달려 온 우리로서는 무심히 지나치기 어렵다.
외신보도에 따르면 이 같은 통화절상 압력은 선진공업국 중심의 G5그룹에 신흥공업국들까지 끌어들이자는 논의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발상은 국제통화제도의 운영을 미국의 이해중심으로 운영하자는 미국식 이기주의의 발로일 뿐이다. 그들이 G5그룹을 확대 운영하려는 속셈은 이 모임을 통해 국제통화제도의 안정과 무역확대를 기하자는 생각보다 이 그룹을 이용해 그들 자신의 뿌리깊은 무역적자를 해소해 보자는 생각이 앞서 있음을 짐작케 만든다.
우리는 물론 이 같은 미국 업계 일부의 단순하고 정당화되기 어려운 주장을 미 행정부가 받아들일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G5를 중심으로 한 선진공업국 그룹들은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보다 광범위하고 세계 경제발전과 무역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포괄적 현안들을 협의하고 조정해야지 특정국의 이해중심으로 운영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더구나 이 같은 미국업계 주장은 그들이 실패한 시장경쟁을 행정부의 영향력으로 만회하려는 불합리한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어서 우리로서는 더욱 받아들이기 어렵다.
비록 우리가 대미무역에서 얼마간의 흑자를 내고 있지만 미국의 무역규모나 적자에 비하면 조족지혈이고 대미 흑자 국의 흑자순위에서도 훨씬 아래에 처져 있다. 85년의 흑자규모는 브라질·멕시코·대만·홍콩보다 훨씬 적다. 그런데도 미국업계가 유난히 우리와 대만을 지목하여 통화절상 압력을 기대하거나 G5로 끌어들이려는 주장이 나오고 있음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원 화의 가치는 지난 20여 년간 내자부족으로 언제나 과대평가 되어 왔지 가치이하로 저 평가되어 온 적이 거의 없었다. 또한 이 같은 원화 가치 운영으로 국내 인플레의 우려를 감수하면서도 꾸준히 현실화 추세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최근 수년간은 거의 실세에 접근해 있다고 본다. 더욱이 우리 원 화는 달러화에 연동 운영되고 있고 환율의 실세유지가 외채 상환에 불가결한 수출소득의 중요한 보강수단인 점에 비추어 선진통화처럼 자유시장에 맡겨져 있지 않다. 이 같은 사정은 신흥공업국이나 개도국의 경우 거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연1백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대만과 구별되어야 하며 우리나라가 4백65억 달러의 채무국이라는 것도 간과될 수 없다.
따라서 현재의 원화 대외가치는 무역흑자 국, 특히 미국의 영향력으로 좌우되어서는 안되며 통화·국제수지·국내물가와의 종합적 연관 아래서 신중히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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