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에 맞는 국민연금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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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민연금제도의 시안이 한국개발 연구원에 의해 마련되어 공개 협의에 들어갔다.
이번 시안은 오는 88년부터 연금제를 실시한다는 목표아래 장기간에 걸쳐 연구·협의된 결과를 집약하고 있어 크나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민연금제의 실시는 이미 10여년 전에 결정, 입법화되어 있는 데다 사회복지의 확충이 6차 5개년 계획의 주요 목표가 되고 있음에 비추어 연금제의 실시는 이제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최대 과제의 하나다.
이번 KDI의 시안은 국민연금제와 관련된 모든 측면을 두루 고려한 최초의 종합적 모형을 제시함으로써 88년 실시를 위한 중요한 주춧돌을 놓은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시안이 담고 있는 기본방향과 모형의 틀, 그리고 실시과정의 제반문제와 유누점들을 하나씩 점검하고 보완하여 보다 정제되고 현실 적합성을 높인 최종 모형을 완성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국민들의 참여와 폭넓은 견해들을 수렴해야 함은 물론이다.
KDI시안은 연금제의 조기도입과 재정적 안정을 우선시키되 단계적 확충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 같은 접근방식은 연금제 도입에 따른 사회·경제적 충격을 되도록 줄이고 연금재정의 불안정화를 미리부터 막아 보자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단계적·보수적 접근방식은 조기도입의 긴요성과 초기의 과욕에 따른 부작용을 함께 고려한 결과로 일단은 불가피한 방향이라 평가된다.
많은 선진국 경험에서 연금제의 복지수요와 재정적 안정이 상충되는 부작용을 보아온 점에 비추어 단계적 확충과 우리 실정에 맞는 연금재정 안정에의 배려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그러나 이런 신중과 배려가 지나치면 연금제의 실효성 자체를 약화시킨다. 이번 시안이 제시하고 있는 연금급여의 수준이 너무 낮은 점이나 정부 재정의 기여가 거의 없는 점은 이 모형이 갖는 최대 취약점이다.
전자의 연금급여 문제는 재원 조성과의 상관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너무 보수적으로 산정되어 연금의 실효성을 주장하기 어렵다. 더욱이 후자의 정부 기여문제는 이 제도의 공익성이나 사회보장성에 비추어 전면 재검토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국민연금제는 현대국가의 사회복지 정책 중 가장 핵심 되는 부분인 만큼 정부가 당연히 기금 또는 급여의 일정율을 기여하지 않으면 안된다. 가입자와 기업에만 의존해서 국민연금제를 운영한다면 연금제의 본래 뜻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의료보험제에서 나타난 부작용을 되풀이 할 뿐이다. 이 문제는 철저한 재고가 있어야 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번 시안이 기존 퇴직금을 연금으로 흡수하는 구상이다. 이는 물론 연금각출의 충격을 줄인다는 발상이지만 현행 퇴직금 제도가 후불 임금의 성격인 점에 비추어 근로자의 부담을 상대적으로 가중시킨다. 따라서 퇴직금제도는 연금제로 대체되기보다는 기업연금의 형태로 능력에 맞게 발전시키는 편이 바람직하다.
출발부터 지나치게 욕심부리지 말되 최소한의 실효성은 갖도록 재원조성 방법과 급여내용은 개선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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