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증 서류 많게는 1000장…뒤늦게 꼼꼼해진 환경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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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1달 걸리던 인증 3개월까지 늘어났다. 지난해 인증 신청해 아직까지 못 받기도”

한 수입차 업체 인증 담당 임원 A씨는 디젤차 인증만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본사에선 출시 시기를 정해놓고 압박하는데 환경부 인증을 통과하기가 만만치 않아서다. 올 초 한 중형 디젤차를 인증받으려고 서류 800장을 준비했던 노력을 다시 해야한다고 생각하니 까마득하다.

연비·배출가스 실제 테스트 후 OK
짧게는 1주 걸리던 기간 석달 넘어
“출시 지연 소비자에 불편 줄 수도”

A씨는 “서류는 내도 내도 또 내라고 하고, 호출도 잦다. 하지만 환경부가 인증 권한을 쥔 ‘갑’이라 하소연할 데도 없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9월 불거진 폴크스바겐 ‘디젤 게이트’ 이후로 디젤차 인증이 빡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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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출 서류 많게는 1000장 넘어간다. ‘자료 미비’ 이유로 서류 보완 요구받는 경우 많아”

환경부 관계자는 “디젤 게이트 이후로 한 번 볼 서류도 두 번 세 번 더 확인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수입차 업계는 물론 국산차 브랜드까지 비상이 걸렸다. 특히 벤츠·BMW·아우디 등 디젤차가 주력 모델인 독일 3사가 직격탄을 맞았다.

윤대성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전무는 “수입차 업계 전반적으로 디젤 신차 출시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차 인증은 환경부 산하 인증기관인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에서 맡고 있다. 유독 신차 인증이 깐깐해진 건 지난해 연말부터다. 일단 제출해야 할 서류 양이 늘었다.

한 수입차 인증 담당자는 “제출해야 할 서류가 적게는 수백 장, 많게는 1000장이 넘어간다”며 “‘자료 제출 미비’를 이유로 연구소에서 서류 보완을 요구할 때가 많다. 체감적으로 (디젤 게이트 이전보다) 서류 준비량이 2배 이상 늘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테스트 강도도 세졌다. 과거엔 서류만 확인하고 ‘OK’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실제로 테스트를 진행하는 경우가 늘었다. 수치가 조금만 틀려도 인증 담당자에게 확인 전화가 걸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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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분기 인증받은 수입 디젤차 전년 동기 대비 3분의 1 수준. 6월엔 한 대도 인증 못 받아”

한 수입차 업체 인증 담당자는 “배출가스·연비 같은 경우 워낙 예민하게 검증하다보니 인증을 통과하기 위해 일부러 연비를 낮춰 제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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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해진 신차 인증을 통과하고 출시된 메르세데스-벤츠 ‘E220D’(사진 왼쪽)와 르노삼성차 ‘SM6 디젤’.

그렇다보니 통상 1주일~1달쯤 걸리던 인증 심사 기간이 3개월 넘게 이어지기도 한다. 볼보의 경우 지난 3월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XC90을 공개하고도 5월에서야 환경부 인증을 통과해 지난달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지난해 인증을 신청했지만 아직까지 인증을 받지 못한 브랜드도 있다. 피아트크라이슬러는 지난해 10월 환경부에 지프 체로키 디젤 모델 인증을 신청했지만 자료 제출 미비를 이유로 아직까지 보류 상태다.

현대차 관계자는 “제네시스 G80 디젤 모델을 내년 초 출시하기로 했는데 환경부 인증이 강화돼 원래 일정보다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난해 2분기엔 81개 수입 디젤차가 인증을 통과했다. 하지만 올 2분기엔 25개만 인증을 받았다. 6월엔 1개도 인증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환경부는 지난 18일 과거 인증을 받은 수입 디젤차에 대해서도 재검증을 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 관계자는 “업체가 과거 제출한 서류와 본사에 같은 차량의 서류를 요청해 비교 검증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인증을 원칙대로 꼼꼼하게 하는 건 좋지만 공무원들이 책임을 안 지기 위한 ‘보신주의’로 흘러선 안 된다”며 “신차 출시가 가로막혀 소비자 선택에 불편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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