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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의 재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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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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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솔직히 이번 리우 올림픽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대회 초반 펜싱 에페 종목에 출전한 박상영이 “할 수 있다”는 무한 긍정의 힘으로 기적과도 같은 역전 금메달을 땄을 때 반짝 기쁘고 놀랐지만 그게 전부였다. 나이 탓인지 삶의 여유 탓인지 한국이 금메달을 몇 개 따든 나와 무슨 상관인가 싶을 만큼 덤덤했다. 그런데 태권도 남자 68㎏급에 출전한 2012 런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이대훈이 8강전에서 지고도 쿨하게 승자를 향해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는 기사를 읽고 이번 올림픽에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이대훈은 8강전 패배 후 눈물을 쏟는 대신 상대 손을 번쩍 들고는 이렇게 말했다. “메달을 못 땄다고 인생이 끝난 건 아니다. (져도) 상대 선수를 존중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한 가지 경험을 했다. 졌다고 기죽고 싶지 않다.”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국 사회에서 ‘경쟁’이란 때론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하게 여겨지지만 동시에 가장 폄훼되는 단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핵심 가치인데도 경쟁이란 말만 나오면 넌더리부터 치는 사람이 적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대훈의 “더 나은 사람”이란 말에서 경쟁의 의미를 재발견했다.

일부 선택받은 사람만 나갈 수 있는 올림픽 무대, 그 쟁쟁한 선수들 사이에서 무려 동(은)메달씩이나 따고도 숱한 한국 선수들은 “금메달이 아니어서 죄송하다”며 눈물을 쏟는다. 그런데 모두가 금메달을 딸 거라 기대했지만 패자부활전을 거쳐 동메달을 걸고서도 이대훈은 당당히 웃었다. 전자와 후자의 태도를 가른 건 경쟁의 목표에 있지 않았을까. 오로지 상대를 이기는 데 두느냐, 아니면 나의 성장에 두느냐의 차이 말이다. 이대훈은 1등이 아니면 모두 패자인 경쟁을 한 게 아니라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경쟁’을 했고 그 경쟁에서 다른 많은 승자와 함께 당당히 승리했다. 그러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상대를 이겨 오로지 나만 성공하는 걸 경쟁의 본질이라고 여겨 왔다. 심지어 성장과 발전, 다음을 존중해야 할 교육현장에서조차 말이다. 단 한 사람의 승자가 되기 위해 온갖 무리수를 두는 경우도 허다했지만 늘 ‘치열한’이라거나 ‘지나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경쟁’ 자체를 깎아내렸다. 하지만 이대훈은 경쟁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 줬다.

문제는 ‘치열한’ 경쟁이나 ‘지나친’ 경쟁에 있는 게 아니라 ‘치졸한’, 그리고 ‘잘못된’ 경쟁에 있었다는 걸.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