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이 보이는 시국대책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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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디를 가나 누구를 만나나 시국을 우려하는 소리들뿐이다.
대학교수들이 잇따라 시국선언을 하는가하면 비슷한 움직임은 종교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노사문제 역시 신문에 나는 단편적 보도만으로도 심상치 않은 게 짐작이 간다.
당장 무슨 일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긴박감의 연속이지만 누구도 아직 이렇다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침울한 시국은 너무 오래 지속되는 것 같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사회는 정치가 전부는 아닌데, 요즘은 시국염려에 밀려 여타분야가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인상마저 든다.
정국을 주도적으로 풀어야할 입장인 정부·여당이 나름대로 고위당정협의다, 시국대책 마련이다 해서 부산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한 가닥 기대를 모으게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방도는 핵심보다는 주변문제에 너무 집착한 대응책 같아 보인다.
미국의 한 국회의원이 비유했듯 우리의 여야는 『앞을 보고 달리기만 하는 두개의 기관차』꼴이다. 자신은 비켜줄 생각은 않고 상대방보고만 양보할 것을 요구하는 형국이다.
서로가 자기주장만 고집하고 책임은 상대방에게만 전가하려드니 국민의 입장에서는 가슴을 칠 노릇이다. 그래서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는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기회 있을때마다「대 타협」을 외치고 요구한 것은 그 길만이 나라의 파탄을 막는 유일한 방도라고 여긴 때문이 아닌가.
시국을 푸는 실마리를 찾는 일은 더 이상 촌각도 유예할 수 없는 절실하고 급박한 문제가 되었다. 여야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는 것은 우선 그와 같은 위기의식을 함께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라도 빨리 양쪽의 실세를 대표하는 인물들이 만나 툭 터놓고 해결방안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어렵다고 보면 한없이 어려울 수도 있지만 시국의 중대성에 대한 인식만 같다면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 어려운 문제를 쉽게 푸는 슬기야말로 오늘날 정치인들에 대한국민들의 간절한 요구다.
해결의 요체는 당연한 말이지만 주권자인 국민의 바람이 무엇이냐를 헤아리는데서 찾아져야 한다. 작년 선거 후 민심의 동향은 한마디로 변화 속의 안정이란 말로 요약될 수 있다. 헌법을 고치는 일이라든지, 직선제냐 간선제냐는 따위 논쟁은 오히려 지엽 말절의 문제일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개헌공방이 가열되어온 까닭은 여야간의 시국관의 차이나 오랜 부신감도 있지만 공생의 방도를 찾지 못한 데서도 연유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어느 한쪽의 완승이 아닌 타협논리이기 때문에 공생의 길도 자연 그 안에 있기 마련이다.
이제 우리의 국민소득도 2천 달러를 넘어섰고 국민의 의식수준도 해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도 「제로 섬」(영화)의 정치풍토에서 탈피할 때도 되었다는 반증이다.
사회적·경제적 여건은 차츰 선진형으로 발돋움하는데 정치체제만이 제자리걸음을 한대서야 이 나라의 발전은 기약되기 어렵다.
지금은 도약이냐, 정체냐를 가름하는 중대한 분기점이기도하다.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정치의 악순환이 또 되풀이된다면 한나라의 진운은 곤두박질을 칠 수도 있으나 선택을 잘한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호기도 될 수 있다.
물론 참다운 정치안정의 성취가정부·여당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야당이나 재야세력 또한 대국적인 시각에서 흔쾌하게 시국수습에 협력해야 한다.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요구를 곧바로 자신들의 집권과 연관지어 행동한다면 그런 사고 방식자체가 민주화를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한다.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도무지 있는 것 같지 않다. 지금은 앞으로 전개될 정치일정을 분명히 밝히는 용단을 내려 국민에게 앞이 보이는 희망을 주어야할 때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국민들간에 고조되고 있는 불안감을 풀어주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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