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김정일"… 부드러워진 부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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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사태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미국과 북한이 사실상 대화를 진행 중이라는 인상이며 북한에 대한 미국의 발언도 한층 부드러워졌다.

지난 18일 중국 다이빙궈(載秉國)외교부 부부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딕 체니 부통령,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장시간 면담한 이후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달라진 미국 태도=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1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미스터 김정일'이라고 불렀다.

부시 대통령이 김정일을 가리키며 존칭을 붙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부시는 김정일을 '독재자'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불러왔다. 부시는 또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 타임스도 이날 크로퍼드 목장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와의 기자회견장에서 부시가 북한 핵 문제를 언급한 내용을 전하면서 부시가 한결 부드러운 태도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국무부 필립 리커 부대변인도 이날 "김정일 정권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초점은 북핵 사태를 평화적이고 외교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답변했다.

◆미.중.북 대화=외교소식통에 따르면 다이빙궈는 불가침을 먼저 보장해 달라는 북한 측의 입장을 전달했고, 미국은 먼저 다자회담에 응해 핵 프로그램의 폐기를 논의해야 불가침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북한에 전달해 주도록 요청했다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북한이 다자회담에 응하면 미국이 체제보장과 경제협력 방안 등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일괄타결 방안을 다자회담에 제시할 수도 있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한 것 같다고 22일 보도했다.

◆대화를 선택한 이유=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북한의 부당한 협박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러나 대화 이외에는 사실상 별다른 해법이 없다는 게 미국의 고민이다.

가뜩이나 이라크와 중동 문제에 발목이 잡힌 부시 행정부는 내년 선거를 앞두고 북핵 문제의 가닥을 잡아나가야 할 처지다. 윌리엄 페리 전국방장관의 예에서 보듯 민주당 측도 북핵 문제가 대책없이 갈수록 악화된다며 공격에 나서고 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이 모두 반기는 중국 측의 외교적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일단 중국식 문제 해결에 힘을 실어주겠다고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해결의 주도권을 중국에 넘겨 시간을 버는 한편 향후 미국이 택할 선택지에 대한 정당성을 더욱 축적하겠다는 계산인 것으로 풀이된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kimc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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