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인 타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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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16일에 열린 미 하원 아시아-태평양소위의「한국의 정치발전과 인권에 관한 청문회」참가자들이 밝힌 견해들은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한「제3자의 시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먼저 외국의회가 우리나라의 정치문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얘기한다는 것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와의 대결에서 이해를 같이하는 전통적 지방인 미국의회가 한국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미국의 대한정책이 직접 간접으로 한국의 안보와 직결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우정어린 충고」로 경청할 만한 대목이 적잖이 있다.
청문회에서는 항상 그렇듯 갖가지 견해개진이 있었지만 몇 가지 공통되는 점이 있다. 그것은 미국으로서 한국의 민주화는 계속 권장해야 한다는 것과 그 목표를 이룩하는 방법은 결국 대화와 타협밖에 없다는 말로 요약된다.
특히『한국역사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에서 한국이 장래의 평화와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헌법문제와 선거문제에 창조적인 타협이 요구된다』고 한「솔라즈」의원의 말은 우리의 정치현실에 비추어 공감이 간다.
또한 미 정부의 한국관계 실무책임자인「개스턴·시거」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보의『정치를 제로 섬 이상으로 발전시키고 상호신뢰를 쌓는데 미국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타협」과「대화」가 한국에는 없었다』고 한 견해는 우리로서는 반추해 볼 대목이다.
헌법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여-야의 첨각적 대립을 해소하는 길이 타협밖에 없다는 것은 한국의 정치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 건 의견을 같이한다.「솔라즈」의「창조적 타협」(Creative compromise)도 우리정치권에서 제기된「대 타협」과 그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따지고 보면 민주주의는 우리 고유의 것이 아니고 서구에서 시작된 제도다. 서구사회에서 조차 오랜 파란과 곡절을 거쳐 정착된 이제도의 이입에는 따라서 진통이 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다.
말로는 민주화를 역설하고 강조하면서도 이를 체질화하는데 아직 익숙지 못한 사정도 그런데서 연유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지향하는 바가 궁극적으로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 못한다. 타협이나 대화가 현실타개의 유일한 길이고 민주주의 실현의 수단이라고 여긴다면 우리 정치인들은 새삼「타협」이 함축하고 있는 바를 헤아려야 할 것이다.
마침 이 자리엔 우리나라 야당 국회의장들도 다수 참석, 토론을 방청했다. 미국 조 야의 대한시각은 입장에 따라 평가하기 나름이겠지만 한쪽 의견만 듣고 다른 한쪽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정치의 형평이란 점에서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끊임없이 타협과 대화를 종용하는 우정 있는 설득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물론 한국의 민주화는 한국민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룩해야 할 과제지 다른 나라 사람들이 가져다 줄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이처럼 당연한 논리가 새삼 미 의회에서 운위되었다는 사실도 그렇지만 『미국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해서는 곤란하다』고 한말에서 우리들은 우리 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는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이 없는지 한번쯤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워싱턴에서는 정치발전과 관련시켜 군사부문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베이컨 해군소장은 북한군의 현대화 계획은 그 규모가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에 한국이 군사력의 수적인 열세를 극복키 위해서는 양적 경쟁보다는, 질적 우위를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에 의한 군사위협을 강조하면서 지금은 미국이 대한안보지원이나 군대주둔 정책을 바꿀 때가 아니라고 말했다.
모두 귀중한 충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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