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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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요즘 경찰 당국의 「유언비어」 단속 콘테스트는 웃지 못할 난센스들을 빚고 있다. 택시 운전사가 유언비어 감시자로 둔갑하는가 하면, 『우리 나라에선 서울대, 연대, 고대 등 5개 대학만 인정받는다』는 얘기가 유언비어로 점 찍혀 3천원의 벌금을 물었다.
도대체 그 「유언비어」의 기준이 뭔가. 법률적 해석은 앞서 경찰 당국의 단속 사례로 짐작할 수밖에 없다. 다만 사회학자들은 유언 (루머)을 『어떤 인물이나 사물에 대한 「극적인 이야기」를 함으로써 대중의 「동질적 주의」를 집중시키는 「집합 행동이다』고 해석한다.
어느 사회나 유언비어를 단속으로 잠재운 예는 없다. 유언비어의 그림자를 따라 다니는 한 그 꼬리는 결코 밟히지 않느라.
원래 유언비어는 귀에 들리는 나팔 속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귀엣말」이 전심수단이다.
따라서 유언을 잡기 보다 그 온상을 없애 버리는 족이 더 효과적이다.
유언비어의 온상은 세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유언 집단. 많은 사람들이 유언의 주제에 관해 공통된 심리를 갖고 있는 경우다. 아무개가 하루아침에 부자가 되었다더라 하는 말을 들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무슨 수가 있었겠지』하는 공통된 심리를 갖게 되면 유언비어는 기름에 불을 댕긴 듯이 퍼진다.
둘째 사회적 긴장. 여기엔 역사적인 사례가 하나 있다. 1938년 10월30일 미국 CBS방송은 「H·G·웰즈」의 소설 『제 세계의 전쟁』을 드라머로 엮어 방송하면서 『화성인의 내습』을 예고했다. 미국 시민은 삽시간에 공포에 사로잡혀 전국의 전화가 마비되었다.
그 무렵 미국 사람들은 독일에서 들려 오는 「히틀러」의 괴성과 함께 세계 대전의 전운을 감지하고 있었다. 바로 그런 긴장감이 가상의 화성인 내습을 진실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세째 커뮤니케이션의 부족. 흔히 사회적 긴장을 가져오는 정보의 부족은 보도의 억제에서 비롯된다. 궁금한 정보에 대한 국민들의 목마름은 정보 같은 정보는 무엇이든 마시고 본다.
『유언비어』라는 유명한 저서를 남긴 일본의 「시미즈」 (청수기태랑)라는 사회학자는 여기에 더하여 정부의 「과다 홍보」와 「과소 홍보」도 유언비어의 온상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 어느 쪽도 모두 국민의 불신감을 야기 시킨다는 것이다.
유언은 그 온상을 없애지 않고는 뿌리 뽑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경찰의 유언비어 단속도 그런 노력이 없으면 숨바꼭질의 반복일 뿐이다.
결국 유언비어를 없애는 수고는 우리 사회의 신뢰 회복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여기서 정부가 먼저냐, 국민이 먼저냐의 시비는 별 의미가 없다. 양쪽이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이지만, 이왕이면 정부의 노력이 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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