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중류가정주부의 자기반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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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 남자의 아내,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당신 존재의 의미는?』 『가정은?』 『행복은?』 오늘을 사는 이땅의 아내들에게 이같은 물음을 던질 연극, 중년부부의 사랑 이야기 『위기의 여자』 가 오는4월1∼30일 소극장 산울림에서 공연된다.
20세기 프랑스의 지성으로 일컬어지는 여류작가 「시몬·드·보브와르」 원작. 오증자번역·정복근각색에 임영웅연출인데 40대 중년부부는 아내「모니크」역에 박정자씨, 남편 「모리스」역에 조명남씨가 출연한다. 모니크의 친구·딸·의사역은 연운경씨가 1인3역으로 출연한다.
부부 함께 떠나기로 계획되었던 여름휴가를 남편 「모리스」가 갑작스레 바빠져 못간다고 핑계를 대면서 아내「모니크」 혼자 떠나기를 강권, 마지못해 아내가 떠나는 것으로 연극은 시작된다.
「모니크」가 쓸쓸히 휴가를 보내고 돌아온 날밤, 남편은 자신이 여류변호사 「노엘리」와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놀라움과 분노, 초조와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서「모니크」의 자기 성찰이 시작된다.
의사인 남편과 두딸을 가진 안정된 중류가정의 주부로 「모니크」 는 행복한 여성이었다. 인생을 사랑과 결혼에 걸고 자신은 성공했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자타가 공인해온 모범부부 사이에 균열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편은 「모니크」를 『모범주부라는 이름으로 가족을 짓고 유린하는데 평생을 바쳤고』 『남편의 개성이나 인생의 야망을 철저히 파괴하여 안이한 월급봉투 전달자로 만들었다』 고 비난했다.「모니크」는 위로를 얻기 위해 친구·옛날 애인·의사·점장이·딸「뤼시엔」을 찾아 방황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구원이 없음을 알고 깊이 절망한다.
의사「랑베르」 는 『무조건의 헌신과 사랑이 받는 쪽에 때로는 견딜수 없는 부담이 된다』고 말하는가 하면 딸 「뤼시엔」은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살 생각은 않고 남편과 자식들의 인생속으로 용해되어 스며들려고만 노력했다』고 어머니를 비판한다.
결국 오랜 회의와 절망의 수렁 속에서 그는 다시 어두운 현실로 돌아온다. 구원은 누구에게도 청할수 없다. 남편과 상관없이 미래를 향한 문은 자신이 열어야하고, 자신은 열수 있으리라는 한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자각으로 연극은 끝난다.
실제로 자신들도 40대인 두 주역 박정자·조명남씨는 「위기의 여자」는 우리가 늘 만나는 주변 사람들,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므로 공감대가 넓을것』이라고 말한다.
연출가 임영웅씨는 『이 연극이 한국의 아내들로 하여금 지나치게 남편의 애정, 자녀교육에만 매달리지 말고 한 인간으로서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고 얘기한다.<박금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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