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했던 탈출 협상|마르코스와 미「랙설트」의원의 통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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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마르코스」필리핀 대통령은 자신의 사임을 결정하기 19시간전인 25일 상오3시 마닐라의 대통령궁에서 워싱턴으로「폴·랙설트」상원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미국의 의도를 타진했다.
「레이건」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측근인「랙설트」의원은 두 차례 30분에 걸친「마르코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그의 사임을 강력히 촉구했다.
「랙설트」의원은 작년 10월「레이건」대통령의 특사로 필리핀을 방문, 「마르코스」에게 내정개혁을 요구한바 있다. 「마르코스」는 이 통화에서 ▲「레이건」대통령이 아직도 자신의 권력유지를 원하고 있는지 ▲「코라손」의 새 정부에 참가, 권력배분을 받을 수 있는지 ▲미 해군이「코라손」지지를 위해 마닐라에서 군사작전을 할 것인지, 그리고 ▲자신의 미국망명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물었다.
「랙설트」의원은『「마르코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 것 같았다』고 전하고 계속 권력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 것 같아 자신은 그에게『깨끗이 단념하라』고 종용했다고 전했다.
다음은「랙설트」-「마르코스」의 전화회담 일문일답이다.
◇1차 통화
▲마르코스=미국무성이 나의 하야를 요구한 성명은 아직도 유효한가.
▲랙설트=그렇다.
▲마르코스=「레이건」대통령이 전번에 87년까지 나의 대통령직 수행을 원했다는 성명은 아직 유효한가. 「레이건」대통령도 나의 하야를 원하는가.
▲랙설트=「레이건」대통령이 그같은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또 그같은 요구도 할 수 없다. 그러나「레이건」대통령은 필리핀에서 평화적인 정권이양이 이루어지길 희망하고 있다.
▲마르코스=신 정부에 본인이 참여해(권력배분을 받을 수 있는)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겠는가.
▲랙설트=그것은 현실적이 아니다.
▲마르코스=미 해군이 마닐라에 들어와 있는데「코라손」을 군사적으로 지지하려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의 사항을「레이건」대통령과 상의해 주겠는가.
▲랙설트=약속한다.
▲마르코스=나는 지금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What should I do?)
▲랙설트=깨끗이 단념하라. 지금이 단념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Cut and cut cleanly, the time has come)
(「마르코스」는 이 얘기를 듣고 한참 동안 침묵)
대통령각하, 아직 전화 옆에 계신가.
▲마르코스=나 여기 있다. 본인은 매우 실망했다.
(이 대화로 전화가 끊어지고「랙설트」의원은「레이건」대통령과 백악관보좌관 및 고위관리들과 긴급회의를 가졌다. 이 회의에서「레이건」대통령은「마르코스」의 신정부내 권력분배 가능성 의사타진에 『명예롭지 못하다』며 반대했다)
◇2차 통화
▲랙설트=대통령각하, 어제 밤을 새웠나?
▲마르코스=그렇다. 밤을 새웠다.
▲랙설트=「레이건」대통령이 귀하의 신정부내 권력배분을 반대하고 있다.
▲마르코스=반정부군이 대통령궁을 공격할 것 같다. 본인과 가족의 안전에 대해 확실히 알고 싶다.
▲랙설트=귀하가 하야하기로 결심한다면「코라손」여사측과 귀하의 안전에 대해 협상하겠다.
▲마르코스=미국 당국자들이「코라손」과 접촉해 주겠는가.
▲랙설트=약속한다.
▲마르코스=가족의 안전이 문제다.
▲랙설트=미국으로 오는 것을 환영하고 망명 허용을 약속한다. 그러나 제발 폭력없이 사임하기 바란다.
▲마르코스=생각해 보고 다시 전화하겠다.(이후「마르코스」는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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