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 값과 농정의 신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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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양파·마늘 등 특작물의 수급차질이 올해에도 예외없이 반복될 모양이다. 작년에 과잉 재배했던 탓으로 폭락했던 양파의 재배면적이 올해에는 크게 줄어들어 양파 값이 치솟을 것이 예상되는 반면 마늘재배는 오히려 늘어 가격하락이 전망된다는 것이다. 이에 당황한 농수산부가 강원·제주 등지에 봄 양파 파종을 독려하는가 하면 풋마늘 출하를 늘리도록 하는 등 수급조절에 부심하고 있다.
해방 후 농정의 역사가 결코 짧지도 않은데 똑같은 패턴의 악순환을 해마다 겪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미국처럼 땅덩이가 측량하기 힘들 정도로 넓은 것도 아닌데 손바닥만한 면적을 두고 계획생산을 못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작년만 해도 양파를 재배했던 농민들이 판로가 없고 팔아보았자 추수경비도 건질 수 없게되자 아예 밭뙈기에 썩여버리기도 했다. 재작년에는 양파·고추 등 특작물의 품귀로 귀중한 외화를 들여 대량으로 수입해 오기도 했다.
우리 국민의 특작물 연간수요가 얼마쯤 되는데 어느 고장엔 마늘을 심고 어느 지역에는 고추를 얼마쯤 심으면 수급이 맞아 떨어져 농민도 피해를 보지 않고 값도 안정될 터인데 이런 것 하나 조절 못하는 것은 이유야 어디에 있든 간에 농정의 부재 때문이 아닌가한다.
농수산부는 앞서 생산량조절을 위해 「유통예고제」를 실시했으나 홍보부족에다 농민들이 이를 믿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농민들이 당국의 유통예고를 믿지 않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유통예고를 믿고 시키는 대로 했다가 번번이 실패만 한 경험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농정의 신뢰성이 결여되어 농민들은 아예 믿으려하지 않고 당국이 마늘을 심으라면 오히려 고추를 심는 것이 오늘의 농촌이다.
유통예고제가 안 통하게된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깊이 헤아려 앞으로 농정시책은 신뢰회복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유통예고제도 더욱 구체화시켜야 한다. 예컨대 올해 양파 값과 수요가 얼마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며 현재 어느 지역에 얼마쯤 심을 예정이니 더 이상 파종하면 손해를 볼 것이라는 등 농민들이 예측진단을 정확히 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이같은 진단은 전국 농촌 구석구석에 있는 농협지소나 읍·면사무소 직원이나 게시판·반상회 등을 통해 얼마든지 친절하게 안내해 줄 수 있다.
이외에도 농협이 주도가 되어 계약재배를 확대 실시하는 방안도 강구되어야한다. 또 수급조절을 위한 특작물의 보관시설을 확충하는 노력도 병행해야한다. 특작물의 비축은 기술상의 어려움이 따르고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하지만 가격조절에 완충역할을 하는 비축시설의 현대화와 확장 및 비축기금의 확보는 시급한 정책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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