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실 매뉴얼 제작 “선물 뜯지않고 무조건 반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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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9700원짜리 코스메뉴 만듭니다.”

여의도·관가에서도 대책 마련 분주
해외공관도 대상, 행동요령 통보

서울 용산구 청사 내 컨벤션센터를 관리하는 국방부 근무지원단이 29일 내놓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법) 대처법이다. 전날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지 하루 만이다. 국방컨벤션센터는 장·차관과 장성급들이 학술회의를 하거나 만찬 등을 할 때 사용하는 공간이다. 지원단 관계자는 “원래 양식·중식 코스가 3만3000원, 3만8500원, 4만4000원이지만 기본 코스(3만3000원) 요리에 나오는 메뉴 다섯 가지를 네 가지로 줄이면 2만9700원으로 가능하다”고 말했다.

오는 9월 28일 김영란법 시행이 확실해짐에 따라 ‘3·5·10 시대’에 적응하려는 ‘신(新) 풍속도’가 정가와 관가에서 벌써 펼쳐지고 있다. ‘3·5·10 시대’는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으로 한정한 김영란법 시대를 말한다.

외교부는 전 세계 공관에 김영란법 숙지를 공지한 후 담당부서를 창조행정담당관실로 지정해 사례 연구에 돌입했다. 외교부의 경우 해외 공관 근무자들이 많아 각별히 김영란법 준수에 신경을 쓰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아무래도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큰 혼란을 느낄 수 있어 해외 공관에는 법 시행에 따른 행동요령을 따로 내려보냈다”며 “해외근무자들도 법 적용 대상(속인주의)이기 때문에 한인 커뮤니티와 접촉하거나 현지 특파원단과 만날 때 주의할 점을 명시해 알렸다”고 말했다.

여의도 국회 주변에도 비상이 걸렸다. 국회의원 보좌진이 중심이 된 A대학 출신 친목 모임은 9월 이후부터 회비를 걷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선배들이 돌아가며 식사비를 냈지만 자리가 2·3차로 이어지면 1인당 3만원 기준을 넘기기 십상이어서 모임을 아예 ‘회비제’로 바꾼 것이다.

새누리당 지상욱 의원실은 구체적인 사례를 반영한 매뉴얼을 만드는 작업에 들어갔다. 지 의원은 “집으로 도착하는 선물의 경우 가격을 알 수 없으니 포장을 뜯지 않고 무조건 돌려보내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며 “이런 사례를 정리한 매뉴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다른 의원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의원들은 선물 때문에 곤욕을 치를 수 있다”며 "예컨대 아파트 경비원이 ‘너 한번 당해봐라’는 심정으로 들어온 선물을 보고 신고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파트나 빌라의 경비원들이 앞으로 무서워질 거란 얘기가 의원들 사이에 돌고 있다”고 전했다.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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