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대통령 언론관 유연해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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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언론권력이란 말은 이제 일상적인 용어가 되다시피 했다. 1987년 이후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에서 나타난 이 말은 문화권력이니 경제권력이니 하며 '권력'이란 용어가 유행하던 90년대에 자연스럽게 일상용어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론권력이란 말은 사실 언론으로선 매우 당혹스러운 표현이다. 전통적으로 언론은 권력의 횡포를 감시하는 역할을 자임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언론권력이란 말이 너무도 자연스레 통용되고 있고, 언론인들 스스로도 별로 이의를 달지 않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언론권력은 민주화의 산물이다. 민주화와 함께 언론자유가 확대되면서 언론의 영향력이 급속히 커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언론이 그 영향력에 걸맞은 질적 수준을 유지하고 있느냐는 것인데, 잣대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답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언론이 누리는 자유나 사회적 영향력은 선진국 언론에 뒤지지 않지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나 직업윤리는 갖추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언론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이후, 특히 언론사 세무조사를 계기로 언론개혁은 마치 보수 성향의 메이저 신문들을 개혁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 그 전에는 언론개혁의 주 대상이 방송이었다.

그러나 방송은 어느새 저만치 뒤로 물러나고, 이제 신문이 그것도 이른바 '조중동'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명분은 민주주의를 위해선 의견의 다양성을 보장해야 하는데 3대 메이저 신문이 여론시장을 독과점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국민의 70%가 정치적 정보를 주로 TV에서 얻고 있고 온라인 매체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발달한 우리 현실에서 메이저 신문들이 여론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다는 주장은 경험적으로 검증돼야 할 가설일 뿐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이러한 가설의 타당성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이처럼 검증되지 아니한 가설에 입각해 언론개혁의 목표가 바뀌면서 나타난 부작용은 언론개혁이 보수와 진보의 이념투쟁으로 변질됐다는 점이다. 머리를 맞대고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보다 자신과 '코드'가 맞지 않는 언론을 반대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게 된 것이다. 이래서는 언론개혁은커녕 언론분열과 국론분열을 심화시킬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국론분열이 심각한 상황에서 대통령에 취임했다. 기존의 지역갈등에다 이념갈등.세대갈등이 겹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통합은 盧대통령의 시대적 과업인 셈이다.

그러나 언론에 대한 盧대통령의 인식은 그러한 과업 달성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盧대통령은 지난 4월 초 임시국회 국정연설에서 언론을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라고 말하면서 '족벌언론'이란 표현까지 사용하며 메이저 신문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강하게 드러낸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치를 해야 하는 대통령으로서는 적절치 않은 표현이었다. 일개 시민운동가도 아니고 한 나라의 대통령이 유력 언론사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면 국민통합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특정 신문에 대한 반감은 단순히 그 신문사의 사주나 기자들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그 신문을 좋아서 읽는 수십만 또는 수백만 독자에 대한 반감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도 하나의 가설이 되겠지만, 오늘날 대다수 우리 국민은 제 마음에 드는 신문을 스스로 골라 읽는다고 본다. 이런 독자들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언론권력'에 대한 盧대통령의 태도가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국민통합은 반대자들을 포용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양승목 (서울대교수. 언론학)

※ 약력: 미국 스탠퍼드대 언론학 박사, 2001년 한국언론학대회 조직위원장,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현재 미국 오리건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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