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신약개발은 미래 먹거리 위한 선투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기사 이미지

이경호
한국제약협회 회장

0.01%의 가능성. 신약 개발은 적게는 5000개, 많게는 1만 개에 이르는 후보물질 탐색에서 시작한다. 평균 12년의 긴 산통 끝에 한 개의 글로벌 신약이 출시하는데 드는 비용만 1조원에 달한다. 확률과 시간, 비용만을 따질 땐 어쩌면 무모하기 그지없는 도전이라 할수 있다. 아직은 어린이 몸집에 불과한 한국 제약기업에 실패할 경우 업을 접어야 하는 생사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지금 미래 먹거리에 목말라한다. 우리 제약산업계가 다행스럽게도 희망의 물줄기를 틔울 수 있는 후보 중 하나라고 자부한다. 지난해 한미약품이 글로벌 제약사들에 전례가 드문 8조 원대의 신약개발기술 수출계약을 성사 시킨 것은 신약의 산업적 파괴력을 입증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정부와 국민 역시 요즘 한국 제약산업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제10차 무역투자진흥회의에서 발표된 ‘글로벌 혁신신약 및 바이오의약품 약가제도 개선안’등의 제약산업 지원방안에서도 이를 실감할 수 있다. 일각에선 글로벌 시장에 내놓을 국내 개발 혁신 신약에 대한 약가 인하 감면폭 축소 등의 이번 조치가 약제비 증대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통계를 볼 때 신약의 출시 횟수는 연간 2건 내외다. 기존 신약의 효과를 뛰어넘는 신약에 한정된 지원이어서 그 수는 더욱 줄어든다. 게다가 여기에 소요되는 예상 재정은 매년 단행 되는 약가 인하 절감분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또 이번 안에 대해 국내 기업에 편중된 조치라는 일각의 주장은 매우 잘못됐다. 정부가 한국에 진출한 외국 제약기업들을 충분히 배려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외국기업에 대한 배려가 혁신 신약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기 위한 본래 취지를 퇴색시키고, 보험 재정에 부담을 안길 수 있다는 지적을 간과해선 안 된다.

약가제도 개선이 결과적으로 실물 경제와 사회 전반에 긍정적 기운을 돌게 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고용이 유발되고, 긴 안목에서 국가재정이 건실해지는 것은 물론 국내개발 신약이 미국과 유럽 등 제약 선진국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뽐낼 수 있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본다.

신약이 국제무대에서 창출하는 수익은 막대한 자본이 필요한 제약산업의 특성상 고스란히 고용과 연구개발에 재투자된다. 신약에 대한 가치 보상 역시 결국 신약 개발 인력과 기업의 신약개발 투자로 선순환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조치를 후일 한국 경제를 주도해 나갈 미래 먹거리에 대한 선투자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이해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

우리 제약업계는 정부의 이번 조치에 양질의 일자리와 국부 창출 그리고 윤리 경영 확립으로 보답함으로써 국민 건강과 더불어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는 산업으로서의 책무를 다해나갈 것이다.

이경호 한국제약협회 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