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최경환의 당권 도전 포기 ‘친박 해체’ 신호탄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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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누리당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의원이 6일 8·9 전당대회 불출마와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최 의원의 불출마가 순수한 본인만의 결정인지, 청와대와의 교감 속에 이뤄진 고육지책인지는 불분명하다. 전대에 나가봤자 승산이 희박하니 다음 기회를 노리자는 계산에서 불출마를 택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여당의 4·13 총선 참패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최 의원이 전대에 출마하지 않기로 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순리다.

새누리당은 석 달 전 총선에서 원내 2당으로 전락하는 혹독한 심판을 받았다. 친·비박들의 추악한 공천싸움에 신물 난 유권자들이 야당에 몰표를 줬기 때문이다. 특히 친박계는 유승민 등 청와대의 눈밖에 난 비박계 의원들에 대해 경선 기회까지 원천 봉쇄하는 상식 이하의 행동을 했다. 이것이 지지층의 이탈을 불러 참패의 결정적 원인이 된 건 만천하가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친박계는 총선 이후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또다시 당권을 잡아 패권주의를 이어가겠다는 욕심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새누리당은 ‘정권을 내주려고 작심한 당’이란 비아냥을 들어왔다. 이런 와중에 최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더 이상 민심을 거슬렀다가는 당의 기반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로 볼 수 있다.

최 의원의 불출마를 계기로 새누리당은 진정한 환골탈태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친박들이 앞장서서 계파 해체를 선언하고, 이를 행동으로 입증해야 한다. 그러려면 전당대회 구도부터 바꿔야 한다. 후보들이 친박·비박으로 갈려 골육상쟁의 구태를 재연하면 공멸할 뿐이다. 계파논리에서 벗어나 후보 개개인의 능력만으로 경쟁하는 장을 만들어야 한다. 혹여 친박들이 ‘청와대 뜻’ 운운하며 서청원 의원을 비롯해 총선 참패에 책임이 있는 친박계 인사를 대표에 추대하거나 단일 후보로 밀려 한다면 최 의원의 당권 도전 포기는 꼼수 시나리오로 전락할 것이다. 새누리당이 유권자의 신뢰를 회복할 기회도 영영 사라질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 변화도 절실하다. 여당의 만성질환이 된 친·비박 간 다툼은 청와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비박계엔 문을 닫아걸고 친박계만 중용해 온 박 대통령의 국정 방식에 큰 책임이 있다. 그나마 대통령의 힘이 강했던 지난 3년간은 친박들이 똘똘 뭉쳐 당이 청와대 뜻대로 움직이게끔 도와왔다. 그러나 임기 말인 지금은 최 의원의 당권 도전 포기에서 보듯 친박들이 청와대와의 고리를 끊고 차기 권력을 향해 각자도생하는 상황에 접어들었다. 임기가 1년 반 넘게 남은 박 대통령이 국정 장악력을 유지하려면 친박·비박 가리지 않고 소통하고 설득해 여당 내부의 화합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다. 때마침 박 대통령은 8일 새누리당 의원 전원을 청와대에 초청해 오찬을 함께한다. 이 자리에서 ‘친박 해체’와 ‘수평적 당·청 관계’를 분명한 목소리로 선언하고 유승민·김무성 의원 등 비박계를 포용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새누리당은 위기를 기회로 뒤집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