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를 흔든 시 한 줄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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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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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

첨성대 꼭대기에 홀로 서서
밤새도록 별을 바라보다가
눈사람이 된

-정호승(1950~), ‘소년’ 중에서

5년 전 받은 첨성대 설경 사진…문화유산과 시의 멋들어진 만남

국립경주박물관장으로 있던 2011년 1월 초였습니다. 모처럼 눈이 제법 내려 신라 천 년 수도 서라벌은 함박눈을 뒤집어 썼습니다. 첨성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너도나도 오랜만에 보는 설경을 사진기에 담기 바빴습니다. 지인으로부터 멋진 새하얀 첨성대 사진이 날아 왔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소년’이 바로 떠올랐습니다. ‘첨성대 꼭대기에 홀로 서서/밤새도록 별을 바라보다가/눈 사람이 된’ 소년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래서 ‘소년’을 표절했습니다. ‘이번에/함박눈 뒤집어쓴/하얀 첨성대/그 꼭대기에 홀로 서서/밤새 별 바라보다/눈사람이 된/소년 시인을 보았는가’

시인의 외가가 경주인 것을 뒤에 알았습니다. 첨성대는 시인이 어릴 때부터 무척 친근한 곳이었다고 합니다. 1973년 그의 등단작이 ‘첨성대’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문화유산이 아름다운 시를 낳게 해준 것입니다. 어릴 적 동심을 잃지 않은 시인처럼, 출퇴근길에 첨성대 옆을 걸어 지나다니며 첨성대 저 꼭대기에 올라가 밤새도록 서서 별을 바라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

‘소년’
-정호승

온몸에
함박눈을 뒤집어쓴
하얀 첨성대
첨성대 꼭대기에 홀로 서서
밤새도록 별을 바라보다가
눈사람이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