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플레이어' 박지성 부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1면

16일 밤, PSV 아인트호벤(네덜란드)이 2003 피스컵 예선 첫 경기에서 1860뮌헨(독일)에 4-2로 대역전승을 거둔 뒤 열린 기자회견. 거스 히딩크 감독은 인터뷰 직전 옆 자리에 앉은 박지성의 어깨를 힘차게 끌어안았다. 0-1로 끌려가던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어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한 제자에 대한 대견함과 사랑스러움의 표현이었다.

박지성(22)이 되살아났다. 지난 3월 무릎 수술을 받고 오랜 재활을 거친 그는 2002~2003시즌 막판에 몇 차례 기용됐으나 예전 기량을 보여주지 못해 히딩크 감독을 애태웠다. 그러나 14일 한국 올림픽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후반 투입돼 가능성을 보여준 데 이어 이날 아인트호벤 유니폼을 입고 첫 골을 터뜨림으로써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했음을 알렸다.

박지성은 1860뮌헨과의 경기에서 자신의 포지션인 오른쪽 날개가 아닌 처진 스트라이커로 뛰었다. 전반에는 자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동료들과 손발도 맞지 않았던 박지성은 후반 4분, 동료 레안드로 봄핌과의 멋진 콤비플레이로 상대 진영 가운데를 돌파했다. 달려나온 골키퍼를 슬쩍 제친 뒤 사각으로 찔러넣은 슈팅은 '과연 박지성'이란 탄성을 불러일으켰다. 박지성은 90분 가까이를 소화하며 지치지 않는 체력과 날카로운 볼감각을 과시했다.

히딩크 감독은 인터뷰에서 오랜만에 '멀티 펑션 플레이어(multi-function player)'라는 표현을 했다. '멀티 플레이어'로 줄여 쓰이는 이 표현은 지난해 한국 축구의 화두이자 유행어였다.

"박지성과 이영표는 어느 포지션에 갖다 놔도 제 몫을 하는 선수다. 이런 선수들이 있기 때문에 경기 중 선수교체를 하지 않고도 상황에 따라 포메이션을 바꿀 수 있다"며 히딩크 감독은 한국 선수들의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박지성이 앞으로 처진 스트라이커로 활약할 수도 있다는 말도 했다.

아인트호벤은 2002~2003시즌 35골로 득점왕에 오른 케즈만과 2001~2002시즌 득점왕이었던 헤셀링크라는 두 명의 걸출한 골잡이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헤셀링크가 지난 시즌 8골로 부진해 히딩크는 그의 대역을 찾고 있었다. 올 시즌 박지성이 케즈만의 파트너가 돼 최전방을 누빌 가능성도 있다.

박지성은 "4주간 군사훈련을 받는 바람에 감각이 좀 떨어졌지만 차츰 좋아지고 있다. 이번 첫 골을 계기로 네덜란드 리그에서 더 좋은 활약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정영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