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년까지 할러만 갈것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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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국이 안정감없이 흘러가는 기간이 너무 오래 계속되고 있다.
여야관계가 며칠이 멀다하고 파탄에 빠지고 또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늘 불안정한 상태에 빠져있다.
학원법파동이 수습된후 이젠 괜찮거니 했더니 고대앞 사건이 터졌고, 20일정도 공전한 끝에 그럭저럭 정기국회가 되나보다 했더니 또 본회의 발언시비가 나왔다. 어렵사리 대정부질문을 마치고 나니 이번엔 국회부의장파동이 터져 또 한차례 법석을 떨고 다시 1주일간의 공전을 겪었다.
이처럼 지난 몇개월간 여야는 마치 눈만 마주치면 맞붙는 닭싸움을 연상케할 만큼 불안하고 적대적인 관계를 지속해 왔다. 그러다 보니 여야가 합의한 국회일정이란 것이 걸핏하면 바뀌고 국회공전이니 정회니 하는 말도 하도 자주 듣게돼 심상하게 들릴 정도다.
그런 중에도 지나간 한주일동안 상위를 정상 운영한것이 대견하다면 대견한 일이지만 앞으로 또 개헌특위안을 두고 여야가 한번은 격돌할것은 불가피하다는 예상이 일반화해있다.
야당은 개헌특위를 안들어주면 국민에게 직접 호소할 수밖에 없다고 으르고 있고, 여당에서는 단독통과 불사라는 말이 서슴지 않고 나오니 정말 또한번 붙을 것인가.
도대체 이런 안정감 없는 정국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이런 상태가 예산안만 통과되면 끝날는지, 내년에 가면 나아질는지, 88년에 임박해야 어떤 결론이 날는지 전혀 종잡을수 없다.
이렇듯 정치가 안정감이 없고 내일 일을 모르게 돌아가니 미치는 악영향도 눈에 보이게 안보이게 클 수밖에 없다.
정치의 예측가능성이 떨어지면 각종 계획의 유효성이 떨어지고 필요한 계획을 세우기도 어려워진다. 사회 각분야가 진취보다는 관망쪽으로 흐르고, 중·장기적인 것보다는 단기적인 것을 선호하게 된다.
정국전망이 불투명해지면 유언비어도 많아진다. 전망이 잘 안될수록 궁금증은 커지고, 해결 안되는 궁금증은 유언비어를 더욱 성하게 할 뿐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에 유언비어가 많다는 것은 벌써 오래된 얘기고, 일전에는 국회에서도 유언비어 근절책이 뭐냐는 질문이 나왔다. 돈이 고리를 따라 흐를뿐 생산분야에 투자되지 않는다는 우려도 심심찮게 있었다.
안정감 없는 정치가 이런 현상의 한 원인이 된것은 아닌가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다.
그러냐 안타까운것은 여권이고 야권이고 사태가 이렇게 흘러가는데도 이렇다할 대책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막적으로는 열심히 연구하고 있는지 알수 없으되 이런 상황을 우려하고 진지하게 대용방안을 모색하는 모습이 여야 모두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중요한 정치문제에 관해 여당은 지금까지 유효한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고있는게 사실이다. 선거후 제기된 많은 문제들이 아직 논의단계에도 들어가 있지 않으며, 여당은 해결책을 모색하는 설득력있는 자세보다는 문제를 덮는데 주력한다는 인상이다.
야권 역시 목표를 내놓고 당위성을 고창해 왔을뿐 현실적으로 유효한 접근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여야 할것없이 속셈과 목표는 갖고있지만 현실에 바탕한 단계적인 정국운영방안은 못갖고 있는채 유리한 상황조성만 노리고 사안마다 서로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형국이 아닌가 한다.
이런 상태로 계속 나간다면 지난 몇개월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툭하면 공전이 되고 파동이 일것은 불문가지다.
뭔가 정국의 안정운행장치가 나와야할것 같다. 오늘의 정치정세에서 안정운행장치가 뭣인지 딱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여야 스스로도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여야는 이 문제에 관해 진지하게 모색하고 시안이라도 내놓아야한다.
막무가내로 「하자」「못한다」로 버티다가 공전이나 하고 파동이나 일으키는 정치는 이미 정치일수 없다. 「하되 이렇게 하자」거나 「그것 대신 이걸 하면 어떠냐」라든가, 「좀 더 있다가 하자」든가 뭔가 안을 내야한다.
또 「하자」 고만 부득부득 우기는 것도 정치는 아니다. 「이렇게 하자」고 했다가도 안되면 「요렇게 하자」고 안을 낼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이 안정감 부족한 정국의 근본원인이 88년문제에 있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여야가 88년을 겨냥하고 게임을 벌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목적은 목표의 달성에 있는 것이지 중도의 파탄에 있는 것은 아니다.
피차 단선적인 추구보다는 품을 넉넉히 잡고 밀기도 하고 밀리기도 하는 정치를 함으로써 정국을 안정감있게 끌어나가야 할것이다.
경제여건은 나빠지고 데모는 끊이지 않고 취업난은 가중된다고 하는터에 정치도 뭔가 좀 해야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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