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도잃은 문교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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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문교부의 교육정책이 가끔 상식을 벗어나는 경우가 있어 믿고 따르기 어렵다는 말이 있어온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나 엊그제 발표된87학년도 이후 대입학력고사과목조정과 관련해 생각할 때 일반의 속설이 실감있게 느껴진다.
대입고사과목에서 모국어경시라든지, 국민윤리의 고집, 그리고 수학I과 Ⅱ-1의 혼동은 물론, 현실을 무시한 내신반영률의 충격적 대폭인상은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게 일반의 평이다.
문교부는 해명했다. 영어보다 배점이 낮은 이유는 이수단위비례에 따른 것이었고, 국민윤리 고집은 누가 뭐래도「중요과목」이기 때문이며, 이들 배점상의 문제는 시간을 갖고 신중히 연구, 88학년도 이후 재조정을 검토하겠다고.
수학I과 Ⅱ-1의 혼동은 담당자의 착각이었고, 내신반영률의 문제는 등급간 결과를 좁혀 완화하겠다고 설명했다. 「시간에 쫓겨 실수가 있었다」는 점도 아울러 시인했다. 도대체 이번 학력고사과목 조정에서 시간에 쫓겼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이번의 과목조정은 고교교육과정개편에 따른 것으로, 84년3월 신교육과정시행과 동시에 발표됐어야할 것을 2년이 지나서, 그것도 대학입학학력고사령에 의한 공고마감시한까지 끌면서 고교생을 포함한 예비수험생들에게 불편을 주어왔다.
혹시「결재」전에 공개되면 책임추궁이나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 내용이야 어찌됐든 보안에만 신경을 곤두세운 나머지 부내의 다른실·국관계자에게도 「쉬쉬」하는 모습이 마치 전장에서 적을 대상으로 작전계획이나 짜는 것처럼 비쳤다.
교육정책이 왜 적에게 누설되면 존재가치를 잃게되는 군대의 작전계획과 같아야 하는지. 그래서 많은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지 못한 정책은 항상 실패하고 「문교정책 3년가는것 못봤다」는 오명까지 받는다는 사실을 문교부만 모르고 있는지.
교육에 관한 한 완벽하게 모든 요구를 해결해주는 정책은 물론 있을 수 없다 .정책의 대상이 1천만이 넘는 학생외에 가족까지치면 거의 전국민인데다, 특정시책에 따른 이해관계가 각각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교부는 이번을 계기로 앞으로 정책수립과정에서 군사작전처럼 보안에만 매달리고「결재」에만 신경을 쓰는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 항상 따라다니는「조령모개」나 무사안일·졸속행정이란 달갑지 않은 대명사를 벗고, 국가의「백년대계」를 다루는 기관으로서의 자부심을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권순용 사회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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